재취업 캄캄했는데…‘착한 일자리’ 볕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7일 03시 00분


[2017 리스타트 잡페어/함께 만드는 희망 일자리]<5·끝> 사회적 기업 일자리 ‘제3의 길’… 31일, 11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로 일하는 김정옥 씨.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로 일하는 김정옥 씨.
“잠만 자면 일하는 꿈을 꿀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일을 원했는지 아시겠죠?”

울산에서 초등학교 방과후 강사를 하고 있는 김정옥 씨(52·여)는 하루하루가 아직도 꿈같다. 임신과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고 난 뒤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6년 전.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일을 통해 보람을 얻고, 돈을 벌어 내 취미를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다는 행복감에 지금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김 씨다. 2년 전에는 직접 모은 돈으로 경차 모닝도 샀다.

약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던 김 씨가 다시 직장인이 될 수 있도록 도운 곳은 SK행복나눔재단 사회적 기업 ‘행복한 학교’다. SK행복나눔재단이 교육청 및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설립한 행복한 학교는 방과후 학교 위탁 운영을 하고 있다. 서울 부산 대구 울산에서 운영 중이다. 방과후 교사를 고용해 일자리를 만들고 취약계층 교육 소외 문제, 공교육 활성화 등까지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김 씨는 “무작정 아이 가르치는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사회적 기업 행복한 학교 덕분에 원만하게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국정과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할 만큼 요즘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덩달아 국내 대기업을 향해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라”는 사회적 목소리도 크다. 하지만 대기업도 끝없이 직접 고용을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문에 SK그룹처럼 사회적 기업의 창업을 도와 일자리를 만들거나 취약계층 취업이 가능한 일자리를 직접 만드는 등 ‘제3의 방식’을 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더 이상 직접 고용이란 기존 방식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출자해 설립한 사회적 기업 이지무브도 대표적 사례다. 이지무브는 장애인, 노약자와 같은 이동 약자들이 사용하는 이동보조기구와 복지 차량을 개발하고 제조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장애인이 전동 휠체어에 탄 채로 자동차에 오를 수 있도록 카니발을 개조해 만든 ‘올 뉴 카니발 이지무브’, 의료용 스쿠터 등을 만들어 장애인 이동 편의를 위한 여러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11월 8일 첫 출근을 앞두고 있는 신하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SK 행복나눔재단 제공
11월 8일 첫 출근을 앞두고 있는 신하훈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SK 행복나눔재단 제공
아예 기업이 전문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취업을 돕는 경우도 있다. SK그룹 행복나눔재단 ‘SK 뉴스쿨’이 그중 하나다. 올해 1년간 뉴스쿨 프로그램 교육을 받은 신하훈 씨(23)는 11월 8일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1년간 신 씨가 낸 등록금·재료비는 ‘0원’, 오직 요리에 대한 열정만으로 뉴스쿨에 합격해 당당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레스토랑에 셰프로 취업했다. 신 씨는 “직업전문학교보다 체계적으로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 빨리 취업에 성공해 주변에서도 많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버택배’. CJ대한통운 제공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버택배’. CJ대한통운 제공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서는 기업도 늘고 있다. CJ대한통운 ‘실버택배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실버택배는 택배 트럭이 아파트 단지까지 택배 물량을 싣고 오면 노인들이 친환경 전동 카트를 이용해 각 가정으로 배달해주는 사업 모델이다. 고령 사회에 필요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듦과 동시에 회사 배송 서비스의 질도 높일 수 있도록 고안한 사업 모델이다.

서울 노원구 실배택배 배송원인 이승희 씨(81)는 매달 약 80만 원의 월급을 받으며 택배 배송을 한다. 월급 액수를 떠나 여든이 넘은 나이에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씨는 삶의 큰 동력을 얻고 있다. 이 씨는 “경로당에서 막걸리 먹고, 고스톱만 치던 사람들이 이제 직접 박스를 배달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몸도 움직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씨가 택배 배송 일을 시작한 것은 2010년, 당시 동료는 5명뿐이었지만 이제 25명이 될 정도로 실버택배 프로젝트가 자리 잡았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약 75세. 노원구 상계동 일대에서 ‘택배 할아버지’로 불리는 동료가 꽤 늘었다. 하루 근무 시간은 4시간 안팎이지만 택배 물량이 매일 끊이지 않으니 일자리가 지속돼 안정적인 소득도 보장된다. 주민들과 대화하며 사회적 유대관계를 되찾아 사회구성원으로서 높은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덤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 일자리 창출 업무협약을 맺은 뒤 서울 인천 부산 전남 지역 지자체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현재까지 전국 160개 거점에서 약 1300개의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경기 용인 화성 평택에서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정 여성 등 사회적 약자 일자리 만들기를 위해 ‘카페 휴(休)’를 운영하고 있다. 2011년부터 지자체 및 복지기관 등과 함께 펼치고 있는 지역 사회 공헌 사업이다. 지자체가 카페 장소를 무상으로 제공하면 삼성전자는 임직원 후원금을 기부해 시설 공사 및 기자재를 지원하고, 복지기관은 바리스타 교육 및 운영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현재 총 13곳이 운영돼 75명의 장애인, 이주민 등이 일하고 있다. 2012년 문을 연 카페 휴 수지구청점에서 5년째 근무 중인 신정희 씨(69·여)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 더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의 일자리 만들기가 이뤄졌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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