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19일 박승춘 전 처장과 최모 전 차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박 전 처장 등이 주요 사업과 관련 단체의 비위·불법 행위를 방조하거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기된 보훈처의 주요 비리 의혹을 적폐로 규정하고 청산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는 박 전 처장 재임 기간(2011년 2월∼2017년 5월)에 추진된 5가지 비위 의혹·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호국보훈 교육자료집(안보교육 DVD) 제작·배포, 나라사랑재단 횡령·배임, 나라사랑공제회 출연금 수수, 고엽제전우회와 상이군경회 수익사업 비리 등이 대상이다.
보훈처는 박 전 처장 재임 첫해인 2011년 11월 호국보훈 교육자료집 DVD(1000세트)를 제작해 배포했다. 앞서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는 올 10월 말 이 DVD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의 지시로 국정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고 밝힌 바 있다. 보훈처는 박 전 처장 취임 이후 ‘나라사랑교육과’가 정치 편향적인 안보교육 자료와 프로그램을 개발해 대선(2012년)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지적했다. 2011년 6월 신설된 나라사랑교육과는 보훈처의 안보교육 사업을 주도한 부서로, 피우진 현 처장 취임 직후인 올해 7월 폐지됐다. 보훈처는 DVD 제작 배포에 관여한 공무원 2명에 대해 각각 검찰 고발과 중징계를 요청했다.
2011년 보훈처 직원 복지를 위한 ‘나라사랑공제회’ 설립 과정의 비위 혐의도 확인됐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담당 공무원이 5개 업체에 특혜를 주는 대가로 1억4000만 원의 출연금과 3억5000만 원의 수익금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국무조정실 감사에서 이 사실이 적발됐지만 징계시효 만료를 들어 담당 공무원은 경고 조치만 받았다고 한다. 보훈처는 이날 관련 공무원 4명에 대해 중앙징계위원회에 징계 의결을 요구했다. 또 보훈처는 보훈사업 비영리법인인 ‘함께하는 나라사랑재단’의 부적절한 예산 집행을 적발하고 유모 전 재단 이사장 등을 업무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아울러 보훈처는 고엽제전우회와 상이군경회를 불법적 정치활동과 수익사업 혐의로 이날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고엽제전우회는 ‘안보활동’을 명분으로 종북 척결과 세월호 특조위원장 사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지 등의 ‘관제데모’를 한 의혹이 있다는 것이다. 증빙자료 없이 출장비·복리후생비를 집행했고 위례신도시 주택용지의 특혜 분양 혐의 등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이군경회도 감사 결과 자판기와 마사회 매점 등 일부 사업을 승인 없이 운영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두 단체는 보훈처의 관리 감독을 받도록 돼 있다.
보훈처는 “박 전 처장과 관련 공무원들이 비위·위법 행위를 인지하고도 조치하지 않거나 축소·방기한 것은 공직기강은 물론이고 보훈가족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전 처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오로지 국가 안보를 위해 추진한 보훈사업들을 ‘적폐’로 몰아 나와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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