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부의 연구시설장비 투자 규모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5% 내외로 1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연구 장비에 대한 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효율적 관리 요구가 높아지자 정부는 연구 장비 투자의 낭비적 요소를 줄이려고 노력해왔다. 중복 구입 방지를 위한 심의 강화라든가, 공동 활용 촉진을 위한 관리제도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연구 현장에서는 여전히 연구 장비가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으며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핵심 연구 장비에 대한 외국산 의존도가 높고 투자 확대가 실험실을 넘어 국내 장비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에서는 연구시설 장비를 효율관리의 대상으로만 다룰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융합과 협업연구 생태계의 핵심 기제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정부의 제2차 국가연구시설·장비 운영·활용 고도화 계획이 최근 확정 발표됐다. 가장 큰 변화는 연구 장비 지원과 활용을 통제 중심에서 자율 관리로 전환해 ‘연구 장비 자율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연구기관들이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연구 장비를 구입하고 효율적으로 활용·관리하도록 정책이 바뀐다. 창의적인 연구 환경 조성과 우수한 연구 성과 창출로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포부가 이번 계획에 담겼다. 특히 자율적 관리에 필요한 재원 확보가 가능하도록 연구 장비비 풀링제를 도입하고 연구 장비 집적화를 위한 지원체계 정비 등을 제시해 구체적인 실행 의지도 엿보인다.
연구 장비 산업 지원 방안도 계획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이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국내 연구 장비 기업들은 선진 기업들의 경쟁력에는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소프트웨어 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공공조달체계를 활용해 개발 장비의 판로를 지원하고 연구 장비 전문 인력의 고용 안정성을 높이는 등의 연구 장비 산업 지원 방안이 제시됐다.
선진국에서는 체계적인 연구 장비 공동 활용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단순히 장비를 함께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협업 연구생태계의 핵심적 기제로 활용해 네트워킹 연구시스템을 창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연구 장비 생태계의 발전 수준과 개발 역량이 선진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선도형 연구체제로의 전환과 연구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빠른 전진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이 연구실 간 벽을 넘어 연구 장비를 함께 활용하고, 나아가 소통하고 협력하는 체계를 조성해 가야 한다. 연구 장비 개발은 연구 현장과 산업이 밀접히 연계되고 기초과학에서부터 여러 기술이 종합적으로 다뤄지는 분야다. 따라서 발전된 기초과학과 기술적 역량을 토대로 전문가들이 협업하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이를 통해 독창적인 첨단 연구 장비 개발과 세계적 연구 장비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연구 장비 개발은 과학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노벨상의 보고이기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