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주애진]‘1’이 없으면 ‘2’도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2일 03시 00분


주애진 산업2부 기자
주애진 산업2부 기자
※이 글에는 영화 ‘더 랍스터’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세계가 있다. 홀로 남은 사람들은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마지막 기회를 얻는다. 이곳에서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숲으로 쫓겨난다.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마음에 없는 상대를 사랑하는 척 연기한다. 거짓이 들통나자 그는 어두운 숲으로 도망친다.

숲은 커플이 되길 거부하는 외톨이들의 세계다. 사랑을 강요하던 바깥과 달리 숲에서는 사랑을 금지한다. 남자는 여기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남자와 여자는 근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둘은 숲에서 달아나기로 결심하지만 ‘외톨이들의 리더’가 이를 눈치 채고 여자의 눈을 멀게 한다. 여자와 숲에서 도망친 남자는 둘을 연결해 주던 공통점(근시)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낀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2015년)는 결혼이나 연애에 무관심한 사람에게 ‘비정상’이란 딱지를 붙이는 우리 사회와 닮았다. 혼자인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거나 걱정을 핑계 삼아 훈계하는 무례함을 요즘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짝을 찾지 못했거나 자발적으로 혼자를 택한 사람들의 초조함을 부추긴다.

명절이 다가올수록 솔로들의 스트레스지수는 치솟는다. “빨리 결혼하라”는 주변의 압박이 커지기 때문이다. ‘비혼(非婚)’을 선언한 한 친구는 이번 설 연휴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을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일을 핑계 삼아 연휴에 집에 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매년 이맘때 언론에 보도되는 ‘설 연휴 가장 듣기 싫은 말’ 설문조사 결과에는 “언제 결혼할래”라는 질문이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 틈을 공략하는 마케팅도 기승을 부린다. 한 결혼정보회사는 설 연휴인 15일부터 18일까지 상담소를 방문하는 고객에게 호텔의 고급 선물세트를 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2월 한 달간 상담을 받으면 음료 기프티콘도 준다. “결혼에 대한 친인척의 잔소리가 심해지는 시기에 싱글 남녀를 응원하기 위해”라는 설명이다.

수도권의 한 쇼핑몰에서는 설 연휴가 끝난 다음 주말에 30대 싱글 남녀를 위한 와인파티가 열린다. 1인당 참가비는 3만5000∼4만 원이다. “설 연휴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듣느라 지친 싱글에게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취지다. 명절 전후나 연말에 주로 열리는 솔로파티 중에는 15만 원이 넘는 고액 참가비를 내야 하는 곳도 있다. 온 사회가 나서서 사람들이 혼자임을 견디지 못하도록 부추기고 이를 이용하는 것만 같아 어쩐지 씁쓸하다.

마음이 맞는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뿌리가 견고해야 함께하는 기쁨도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소설가 정이현은 장편소설 ‘사랑의 기초’에서 사랑을 ‘두 개의 서로 다른 포물선이 공중에서 조우해 마침내 하나의 점으로 겹쳐진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두 포물선이 오래도록 같은 방향을 그린다면 좋겠지만 영원히 하나의 선으로 겹쳐질 수는 없다. 그 어떤 선과도 겹쳐지지 않는 순간을 스스로 그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더 랍스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는 여자처럼 장님이 되기 위해 나이프를 들고 화장실에 간다. 세면대 거울 앞에서 망설이는 남자와 밖에서 그를 기다리는 여자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남자는 스스로 눈을 찔렀을까. 기자의 추측은 ‘아니요’다. 여자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우선 ‘나를 사랑하는 나 자신’이 필요한 법이다. ‘1+1=2’라는 평범한 수학 공식에서 알 수 있듯이 1이 없으면 2도 존재할 수 없다.
 
주애진 산업2부 기자 jaj@donga.com
#영화 더 랍스터#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소설가 정이현#소설 사랑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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