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광주 무각사에서 주지 청학 스님(65)은 법정 스님의 손때 묻은 육필 원고와 유럽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서울 성북구 길상사 초대 주지이기도 한 청학 스님은 법정 스님과 스승은 다르지만 송광사 문중의 사형, 사제지간으로 오랜 교분을 나눴다.
청학 스님은 이날 “8주기를 앞두고 법정 스님 생각이 더욱 간절해 옛날 짐을 정리하던 중 육필 원고와 사진들을 찾았다”고 밝혔다. 이 원고는 1992년 법정 스님이 청학 스님의 은사 향봉 스님(1901∼1983)의 비문(碑文)을 위해 쓴 것이다. 평소 글에 까다로운 법정 스님이 비에 들어갈 글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청학 스님에 따르면 법정 스님이 인연이 적지 않은 사숙 향봉 스님을 위해 글을 쓸 것을 자청했다.
이 원고는 200자 원고지 9장 분량으로 법정 스님은 향봉 스님의 삶을 기린 뒤 “선사(禪師) 가신 지 10년 문도들이 그리는 간절한 뜻에서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돌을 깎고 글을 새겨 선사의 자취를 뒷날에 전하고자 한다”라고 썼다. 무소유의 삶으로 잘 알려진 법정 스님 특유의 성정이 드러나는 구절이다. 그럼에도 ‘선사 가신 지 어느덧 십년/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시는고/서릿발 같던 그 회초리와 고함/따뜻한 손결임을 이제야 알겠네’라는 시를 남겨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진은 1990∼1991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과 법정 스님과 청학 스님이 1991년 10월부터 2개월여 동안 함께한 유럽여행에서 찍은 20여 장이다. 유럽 사진에서는 여유롭게 기차역에 앉아 있거나 거리에서 빵을 먹는 법정 스님의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기 법정 스님은 영국에서 명상가 크리슈나무르티와 관련된 시설을 방문하는 등 수도원과 공동체 운영에 큰 관심을 가졌다.
청학 스님은 “법정 스님은 수행과 절제에 관한 한 누구보다 철저했기 때문에 그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라며 “특유의 죽비를 치는 듯한 스님의 쓴소리와 혜안이 그립다”고 말했다.
길상사는 11일 설법전에서 ‘법정 스님을 그리는 맑고 향기로운 음악회’를 연다. 음력 기일인 13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추모법회를 봉행한다. 이 법회에서는 길상사 주지 덕일 스님의 인사 말씀에 이어 법정 스님의 영상 법문을 상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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