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피켓 든 시민들 항의하자… 안희정, 두 눈 질끈 감으며 말 멈춰
檢, 최근 1년 안희정 일정 자료 확보… 4차례 범행 시기와 대조해 추궁
첫 성폭행 러 호텔 숙박도 확인
패딩 점퍼 입고 ‘셀프 소환’ 자신의
비서였던 김지은 씨를 4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운데)가 9일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짙은 남색 패딩 점퍼를 입고 다소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안 전 지사는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가 서울서부지검에 모습을 나타낸 건 9일 오후 5시 5분경. 타고 온 차량은 은색의 구형 쏘렌토였다. 신형철 전 비서실장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다른 동승자는 없었다. 뒷좌석에서 내린 안 전 지사는 남색 패딩점퍼와 베이지색 바지, 갈색 가죽신발 차림이었다. 얼굴은 다소 초췌해 보였다. 현장에는 취재진 300여 명, 시민단체 회원과 일반시민 50여 명이 있었다. 이를 본 안 전 지사는 잠시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포토라인에 선 그는 두 손을 앞으로 모은 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어 가족에게 미안한 뜻을 전했다. 그러나 비서였던 김지은 씨(33) 등 피해 여성의 이름이나 혐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투’ ‘위드유’ 등의 피켓을 들고 온 시민 중 일부는 사과하는 안 전 지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그때마다 안 전 지사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말을 멈췄다.
안 전 지사는 불과 1시간 20분을 앞두고 검찰에 자진 출석을 통보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그는 “검찰은 빨리 소환해 달라”고 밝혔다. 안 전 지사가 ‘셀프 소환’에 나선 건 어떤 형태로든 빨리 검찰 조사를 받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추가 폭로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친구가 운영하는 건설사 소유의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사용한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 탓이다.
유명 정치인이라 장기간 잠적도 어렵다. 일각에서는 이날 오전 북-미 정상회담 추진이라는 대형 이슈가 나온 것을 감안해 검찰 출석을 결정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상대적으로 여론의 조명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인이라면 저렇게 못 한다. 역시 정치인이다. 오후 5시에 갑자기 오면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안 전 지사 출석 당시 검찰은 피해자 김 씨를 처음으로 불러 조사 중이었다. 검찰은 안 전 지사를 3층, 김 씨를 4층에서 분리 조사해 두 사람이 마주치는 걸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 씨 진술과 물적 증거를 토대로 안 전 지사가 업무상 위력으로 김 씨를 성폭행한 혐의를 입증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미 충남도로부터 2017년 1월부터 2018년 3월 초까지 안 전 지사의 행적이 담긴 국내외 일정 자료를 제출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김 씨가 4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목한 시기와 안 전 지사의 실제 동선을 확인 중이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김 씨를 성폭행했다고 폭로한 지난달 25일 전후 행적도 파악했다. 안 전 지사는 토요일인 지난달 2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울에서 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녹화했다. 이어 저녁식사 후 문제의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로 혼자 들어갔다. 김 씨는 25일 새벽 혼자 오피스텔로 왔다가 몇 시간 뒤 나갔다. 이 장면은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이후 안 전 지사는 25일 오후 서울에서 열린 친척 결혼식에 참석했다.
검찰은 김 씨가 처음 성폭행을 당했다고 지목한 지난해 7월 러시아 출장 당시 안 전 지사 일행이 상트페테르부르크 5성급 호텔에 숙박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안 전 지사가 유엔 인권이사회 참석차 지난해 8월 31일부터 9월 6일까지 방문한 스위스 제네바에서의 숙박 현황도 파악했다. 두 차례 해외 출장 모두 전체 일행이 1인실에 묵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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