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후쿠시마 원전 사고, 처음부터 대비책은 없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0일 03시 00분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간 나오토 지음/김영춘, 고종환 옮김/196쪽·1만3000원/에코리브르
◇도쿄 최후의 날/히로세 다카시 지음/최용우 옮김/340쪽·1만6000원/글항아리
◇소와 흙/신나미 교스케 지음/우상규 옮김/320쪽·1만5000원/글항아리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 발생했다. 시스템의 국가, 매뉴얼의 나라로 불릴 만큼 철두철미한 준비성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말이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이어진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일본의 상식과 자존심, 그리고 안전에 대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일본 사회의 지식인들이 쓴 원전 관련한 책들이 잇따라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정부의 급격한 탈(脫)원전 정책과 원전 밀집 지역인 경북 포항과 경주 지역의 지진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큰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국정의 총책임자였던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썼다. 사고의 발생과 수습, 그리고 이후 그가 펼친 탈원전 운동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중대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런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도 제도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간 총리는 책에서 일본 사회가 원전 사고를 대비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관련법인 ‘원자력재해대책특별조치법’은 정작 큰 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고, 주무부처인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수장은 경제산업성의 소속기관이라는 이유로 낙하산 인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간 총리가 보안원장에게 “당신은 전문가인가”라고 묻자 “저는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입니다”라는 말이 돌아왔다는 대목에선 묘한 씁쓸함을 전한다.

총책임자로서의 인간적인 고뇌 역시 묻어난다. 원자로 자체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후쿠시마 원전으로 가야 하는 상황. 간 총리는 “내각총리대신인 나는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 ‘갔다 와’ 하고 명령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간 총리는 “나 자신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며 탈원전 운동에 나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도쿄 최후의 날’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자본 네트워크’를 추적했다. 일본의 반핵 운동가인 저자는 전 세계 우라늄 광산을 지배한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방사능 원자론’을 처음으로 주창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원자력 발전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분석하며 ‘원전 카르텔’의 실체를 파헤친다.


‘소와 흙’은 후쿠시마 인근 지역에서 안락사를 피한 소들이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며 번식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책은 “씹는 것을 일로 삼는 소들은 뛰어난 제초 역할을 하며 땅의 황폐화를 방지한다. 사람이 귀환하는 날까지 농지를 계속 유지하는 데 소의 역할이 크다”며 원전 사고로 인해 삶의 방식이 변한 인간과 동물, 우리 주변의 환경을 되돌아보게 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후쿠시마#원전사고#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도쿄 최후의 날#소와 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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