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태평양에 휘몰아치는 거친 통상의 격동이 심상치 않다. 그냥 휘젓고 지나가는 폭풍이 아니라 전후 세계 자유무역 체제의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거대한 쓰나미이다.
어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외국산 철강(25%)·알루미늄(10%)에 대해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시작될 통상 분쟁은 미중 헤게모니 게임, 북핵 등 통상과 안보 이슈가 뒤엉킨 쓰나미급 무역전쟁으로 번질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유무역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교묘히 이용해 국내 정치용 통상정책을 펼치고 있다. 게리 콘 국가경제위원장이 이번 일괄관세 부과에 반대했지만 결국 그는 백악관을 떠났다. 그의 정치적 기반인 ‘러스트 벨트’의 제조업만을 의식하는 트럼프에게 그런 고상한 자유무역 논리는 흘러간 옛 노래일 뿐이다.
여기에 맞장구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장기 집권을 꿈꾸는 시진핑의 ‘중국몽’, ‘강군몽(强軍夢)’이다. 2050년까지 세계 1위의 경제·군사 대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2001년 가난한 차이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받아들일 때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에서 미국을 큰형님 정도로 모시고 잘 지낼 줄 알았다. 그런데 엉뚱하게 미국을 제치고 팍스 시니카 시대를 열겠다고 설쳐대고 있다. 또한 워싱턴이 엄청난 대중적자를 줄이기 위해 무역 제재를 하면 즉각 보복하며 대들고 있다. 이에 지난달에 발표된 ‘2018 미국의 통상어젠다’에서 통상정책을 국가안보 전략 차원에서 보고 ‘중국을 단순한 경제적 경쟁자를 넘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로 못 박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다가오는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재 역할을 해 주어야 할 WTO가 기둥부터 흔들리고 있다. 분쟁해결 제도가 중국 등에 유리하게 잘못 작동하고 있다고 미국의 불만이 대단하다. 사실 미국은 그간 100건 이상 피소되고 엄청나게 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WTO가 계속 중국 같은 경쟁국의 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 같은 승부수를 던질 인물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국제통상의 쓰나미는 작게는 한미 무역 불균형에서 대북 경제제재, 미중의 힘겨루기 등 복잡하고 이질적인 통상, 안보, 북핵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이나 군사동맹 같은 제도적 틀보다 ‘마음이 통하는(like-minded) 국가들’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그리고 통상과 안보를 뒤섞어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우선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분명히 하고 직면한 대미 현안을 풀어 나가야 한다.
이번 철강·알루미늄 일괄관세 부과에서 동맹국은 예외가 될 수 있다고 협상의 운을 떼고 있다. 역시 협상의 달인 트럼프답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미국의 ‘진정한 친구(real friends)’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면 한미동맹에 심각한 균열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지금 묘하게 통상이 대북 경제제재와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차이나 후려치기를 늦출 테니 평양 팔목 비틀라’고 시진핑과 ‘빅딜’을 하고 대북 제재에 베이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런 절묘한 미중 합작이 잘 먹혀 가는 시점에 서울이 남북대화의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 제발 정부가 잘해주었으면 좋겠다. 과거처럼 잘못 헛발질을 하면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통상관계도 구렁텅이에 빠진다.
한미 FTA 재협상도 결코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다. 대선 기간 중 나쁜 무역협정으로 찍힌 2대 지역무역협정 중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7차례나 재협상을 했는데 엉뚱하게 캐나다가 물고 늘어져 난항이다. 결국 그 불똥이 한미 FTA 재협상으로 튀고 있다. 특히 대미 흑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자동차 이슈를 잘 협상해야 한다. 이미 1997년 자동차시장 접근에 슈퍼 301조가 발동된 적이 있지만 잘못 대응하면 이번에는 301조로 두들겨 맞을 것이다. 한국GM의 질질 끄는 협상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대통령이 지난번처럼 ‘미국에 단호히 대응’ 운운하며 통상 전선의 전면에 나서면 안 된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국가지도자는 뒤에 서서 외교안보, 대중·대미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통상의 꼬인 매듭을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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