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가 8세였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송아지 우는 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물으니, 내시가 “우유를 짜서 타락죽(駝酪粥)을 만들려고 하는데 새끼가 따라와서 우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세자가 “내가 아직 소를 못 보았으니 한번 보게 끌고 오라”고 말하자 끌고 왔는데 송아지 입에 망이 쳐져 있었다. 세자가 그 까닭을 묻자 내시들이 “송아지가 어미젖을 빨까 염려해서 그 입을 막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세자가 “이것을 보니 차마 타락죽을 먹을 수가 없다. 앞으로는 동궁에 타락죽을 올리지 말라(見此, 不忍喫酪粥, 此後東宮勿令進之)”고 했다. 찬선(贊善) 송준길(宋浚吉)이 이 말을 듣고 ‘맹자(孟子)’ ‘곡속((각,곡)속)’장을 세자께 일러 드렸다.
안정복 선생(1712∼1791)의 ‘순암집(順菴集)’ 제5권 ‘보덕 정술조에게 보내는 편지(與鄭輔德述祚書)’에 수록된 이야기입니다. 세자는 뒷날의 숙종(肅宗)이 됩니다. 우유를 얻으려고 송아지의 입을 막은 광경을 본 어린 세자는 그 죽을 ‘차마’ 먹지 못하겠다고 하고 스승은 세자의 그런 마음을 칭찬합니다. ‘곡속’장은 희생으로 끌려가는 소를 본 제 선왕(齊宣王)이 “저 소가 죄도 없이 사지(死地)로 벌벌 떨며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으니 놓아주라”라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리고 약한 존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간이 타고난 착한 본성일 것입니다. 그런 세자의 모습을 하나 더 봅니다.
하루는 주상을 뵙고 돌아와 보니 내시 하나가 세자 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세자가 “이 자리를 치워 버려라”고 말했고, 이어 그 내시를 해고해 동궁에 들지 못하게 했다. 내시 수장(首長)이 와서 벌을 줄 것을 청하자 세자가 “이자는 꾸짖어서 될 사람이 아닌데 무엇하러 굳이 벌을 주겠는가(此非可責之人, 何必罪之)”라고 말했다.
겁도 없이 세자 자리에서 잤다니 아마도 어린 내시였을 겁이다. ‘이 내시는 개선의 가능성이 없으니 해고하라. 더럽혀진 자리는 치우라. 그렇지만 굳이 벌을 줄 것까지는 없다.’ 앞서 송아지를 불쌍히 여겼던 세자였으니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차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그 마음, 내 안에 숨어 있는 착한 본성을 깨워야 할 것입니다. 결국은 인성(人性)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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