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판/동서남북]안희정 ‘밀실 리더십’이 화근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5일 03시 00분


지명훈·대전충청취재본부
지명훈·대전충청취재본부
남궁영 충남도지사 권한대행(행정부지사)은 경제통상실장부터 6년 가까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일했다. 그는 안 전 지사와 통화할 때 항상 수행비서를 통해야 했다. 안 전 지사가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서다. 보통 자치단체장들은 개인 휴대전화를 행정조직 참모나 출입기자들과 공유한다. 수행비서가 곁에 없는데 긴급한 사안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남궁 권한대행은 행정부지사가 되고서야 안 전 지사 개인 휴대전화로 ‘추정’되는 번호를 알게 됐다. 언젠가 모르는 번호의 전화가 걸려와 받았더니 안 전 지사였고 이후 몇 차례 전화를 걸어 연결된 것이 추정의 근거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 안 전 지사의 개인 휴대전화인지는 확실치 않다. 여전히 진짜 번호는 도청 내 정무라인 일부 핵심만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무부지사와 비서실장 등 정무라인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때 안 전 지사와 함께 일했거나 선거를 도운 인사들이다. 상당수는 안 전 지사와 동향(논산)이다. 안 전 지사가 첫 임기 초인 2010년 7월 정무라인을 구축했을 때 일반 행정조직이 술렁였다.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이후에도 별반 달라진 건 없었다. 심대평, 이완구 등 전임 지사들은 행정 공무원을 수행비서로 두면서 일반 행정조직과 소통했다.

안 전 지사 정무라인은 더구나 도정의 또 다른 축인 일반 행정직과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한 공무원은 “왜 일반 행정조직을 멀리하냐고 정무라인에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부탁이나 할 것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혀를 찼다.

소통을 강조한 안 전 지사는 미디어팀을 운영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홍보 등을 강화했다. 또 도정 홍보 명목으로 외부 특강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간 10회 정도였다. 업무시간 외 비공식 특강은 더 많았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미래를 말하다’같이 도정과 무관해 보이는 강연이 많아 국감 때마다 지적을 받았다. 같은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조차 국감에서 “가능한 한 행정수반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도정 파트너들과는 불통이었다. 자유한국당이 다수인 도의회와는 소통 부재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다. 한 도의원은 “안 전 지사는 같은 당인 민주당 의원들과도 자주 만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충남도공무원노조 김태신 위원장은 “안 전 지사가 노조는 도정의 양대 축이라고 대외적으로 말하고 다녀 다른 시도 노조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실제 안 전 지사는 정식 교섭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노조와 자리를 갖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안 전 지사가 6일 사퇴한 뒤 8년 도정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남궁 권한대행은 “안 전 지사가 행정 민주화에 기여했고 시스템 행정을 구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도 지난해 대선 경선 때 11개월째 도정 만족도 1위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미지 영향이 크다는 평가다. 행정안전부 종합평가에선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하위권이었다.

한 전임 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안 전 지사는 예의가 바르지만 도정 성과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최진혁 한국지방자치학회장(충남대 교수)은 “일반 행정조직은 단체장이 인사권을 쥐고 있어 제왕적 불통 리더십을 보이거나 부적절한 일을 하더라도 제동을 걸지 못한다. 단체장의 인사권을 일부 제한하고 의회의 견제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하는 지방분권을 추진하고 있다. 자칫 공룡이 될 수 있는 지자체장의 권한 분산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명훈·대전충청취재본부 mhjee@donga.com
#안희정#리더십#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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