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에 1, 2명꼴 신호 무시한채 건너
달리던 차량 급정거나 경적 일쑤… 최근 5년 3명이상 숨진 무단횡단
17곳중 8곳 중앙차로 도로서 발생
14일 오후 11시 반경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중앙버스전용차로. 40대 남성 한 명이 2차로 도로를 성큼성큼 건너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렸다. 남성이 길을 건너던 곳에서 불과 5m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로를 횡단했다. 남성의 목적지는 중앙버스정류장. 하지만 펜스 탓에 정류장에 올라서지 못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면서 교차로에 서 있던 차량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도로 위 남성을 발견한 차량들이 급정거하거나 차로를 바꿨다. 여기저기서 ‘빵’ 하는 경적 소리가 이어지며 도로가 아수라장이 됐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남성은 멈춰 선 차량 사이를 뛰어 인도로 되돌아갔다.
서울 등 주요 도시에 중앙버스전용차로가 확대되고 있다. 교통 혼잡을 완화하고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다. 덩달아 교통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이는 중앙버스전용차로에 설치된 정류장 탓이다. 중앙버스정류장 양쪽에는 인도로 가기 위한 횡단보도가 있다. 폭이 2, 3차로 정도에 불과하다. 문제는 횡단보도가 짧다 보니 신호위반이나 무단횡단을 감행하는 시민이 많다는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4가 중앙버스전용차로를 확인한 결과 10분에 1, 2명꼴로 무단횡단을 했다. 빨간색 보행신호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유유히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사람도 많았다. 정류장에 서 있는 버스를 향해 손짓을 하며 위험하게 도로로 뛰어드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무단횡단으로 정류장에 들어선 한 40대 남성은 기자에게 “어차피 차량 신호도 빨간불인데 뭐가 문제냐. 다 효율적으로 하면 된다”고 말한 뒤 급히 버스에 올랐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의 보행자 교통사고는 다른 사고보다 피해가 크다. 일반 도로에 비해 차량들의 운행 속도가 빠른 경우가 많은 탓이다. 지난달 4일 오전 5시경 서울 성북구 중앙버스정류장 근처에서 무단횡단 중이던 60대 여성이 지나던 택시에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정류장에는 ‘무단횡단 금지’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서울에서 무단횡단으로 3명 이상이 숨진 17곳 중 8곳이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있는 도로였다.
그래서 중앙버스정류장 주변을 지나는 운전자도 불안을 호소한다. 직장인 강모 씨(32·서울 강북구)는 “전용차로가 있는 도봉로 인근을 매일 운전하는데 횡단보도 근처에서 몸을 들썩이는 사람만 보여도 놀라서 급정거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교통시스템공학)는 “보행자는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간이 충분하다고 잘못 생각해 무심코 도로로 뛰어들게 된다. 교육도 중요하지만 전용차로와 연결된 횡단보도가 보행자 중심으로 안전하게 설계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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