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왜 포퓰리즘이 독재로 변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5일 23시 10분


사법부와 보안기관, 미디어 장악… 서서히, 세련되게 민주주의 파괴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담긴 사법부 독립 훼손·국민소환제…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권력 확대
과거정부 뺨치는 비대한 청와대… 국민에 대한 배신 아닌가

김순덕 논설주간
김순덕 논설주간
만일 지금 다시 대통령선거를 치른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득표율 두 배를 올릴 것 같다.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뒤 구속된 것도 헌정사의 치욕인데 지난주엔 이명박 전 대통령마저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보수 쪽 후보라면 진저리가 날 듯하다. 한 명 구속에 41.08% 득표율이었으니 두 사람이면 82%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물론 최종 판결까지는 무죄 추정이 원칙이다. 하지만 두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집권 당시 청와대를 견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 앞에 사죄해야 도리다. 그래야 혹 되갚을 기회라도 생기게끔 정권 교체의 싹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럼에도 가죽을 벗겨내기는커녕 ‘니가 가라, 연탄가스’나 때는 모습이다. 집권세력이 20년 장기 집권을 호언장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불안하다. 대통령 지지율 71%에,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에다 북한 김정은도 비핵화 카드를 흔들었을 정도면 대한민국은 호랑이라도 잡을 기세여야 한다. 이 불안의 정체가 뭔지, 여럿 붙잡고 물어봤다. 남자들은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미투!’를 외쳤지만 좀 더 캐물으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나라가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작년 대선 결과를 미국 블룸버그나 포린폴리시 같은 외신은 “영국의 브렉시트(Brexit·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을 몰고 온 포퓰리즘이 한국을 덮쳤다”고 분석했다. 청와대가 대통령 개헌안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싶어 했던 ‘촛불혁명’과 그 여파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밖에선 주류세력에 대한 불신과 기득권 집단 부패에 대한 ‘홧김에 투표’로 본다는 의미다.

더 불편한 건 ‘왜 포퓰리즘은 독재정치로 가는 길인가’라는 2016년 말 포린어페어스지(誌) 논문을 보고 나서다. 사법부와 보안기관, 미디어를 장악해 서서히, 세련되게, 눈치채기도 어렵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이 21세기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와 보안기관에 자기 사람을 꽂아놓고, 미디어엔 재갈을 물리는 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식의 전략이다. 반발하면 독살하거나 적폐세력으로 몰면 그만이다. 그러고 나서 지난주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개헌안 사흘 특강을 들으니 모골이 송연했다.

그는 대법관들이 오로지 헌법과 법률, 양심대로 재판할 수 있도록 대법원장의 막강한 인사권을 대폭 축소했다고 ‘촛불 시민혁명의 뜻에 따라 만든 국민개헌’을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관추천위원회에 대통령 추천인 3명을 포함시켰다고 따로 언급하지 않은 건 기이하다. 대통령이 대법관 추천부터 개입함으로써 사법부 독립에 역행한다는 내용을 조 수석이 의도적으로 뺐다면 국민 우롱이다.

포퓰리스트가 장악해야 할 보안·수사기관은 국가정보원, 검경을 비롯해 무궁무진하다. 정부 곳곳의 온갖 적폐청산위원회도 사실상 비밀경찰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 괜히 불안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가 적폐세력을 찍어내 청산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정권 교체 후 쓰나미처럼 밀어닥친 KBS, MBC 이사진과 사장 교체 역시 정상적으로 보기 어렵다.

‘왜 포퓰리즘…’을 쓴 안드레아 켄달 테일러 미 조지타운대 조교수는 민주적 규범을 깨는 이 과정을 ‘권위주의화’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권위주의적이라거나 제왕적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는 과거 내각 꼭대기에 앉아있던 ‘박근혜 청와대’를 닮아 간다는 소리가 나온다. 개헌안 통과에 앞장서야 할 여당도 조문안을 못 봤다니 감히 청와대 견제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기이한 것은 “헌법 개정안을 검토하다 보니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더라”면서도 오늘 아침 개헌안 발의 직전에야 현행 헌법 89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에 넘기겠다는 청와대의 오만한 발상이다. 아무리 대통령비서실장이 장관에게 공개 경고를 할 만큼 제왕적 권력을 누린다 해도 민정수석은 국민이 못 알아들을까 봐 사흘에 걸쳐 개헌안을 공개하고는 “보좌관들이 발의 이전에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합헌”이라고 해석하다니, 그럼 장관들은 핫바지란 말인가.

대통령 취임사에선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다짐해놓고 ‘국민의 권한을 확대’했다며 내놓은 개헌안이 실은 대통령 권한과 국가의 오지랖을 한참 넓힌 내용이라는 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설령 이번 개헌안이 통과 가능성 없는 압박용이라 해도 좋다. 포퓰리즘은 국민, 아니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결국 국가주의 통제로 간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면 충분히 유익했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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