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동아]쇠창살-감금-편견 없는 ‘3無 정신병동’… 환자들이 웃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우리동네 환자중심병원<2>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대학병원내 첫 半개방형 정신병동… 환자들 병실-병동 자유롭게 오가
원하면 컴퓨터-휴대폰 사용도 허용, 예술치유 인기… 환자 폭력성 줄어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인 해마루는 쇠창살, 감금, 편견 등 3무(無)을 실천하는 병동이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로비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명지병원 제공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인 해마루는 쇠창살, 감금, 편견 등 3무(無)을 실천하는 병동이다. 이곳에 입원한 환자들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로비에서 각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명지병원 제공
21일 오전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명지병원 2층. ‘해마루’라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띈다. 여느 병동 간판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은 명지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다.

환자 ‘인권’ 우선하는 정신과 병동


해마루는 ‘밝고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병동에 들어서자 이름처럼 커다란 유리창으로 들어온 따뜻한 봄 햇살이 로비를 가득 비춘다. 유리창 밖으로는 나무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932m²(약 282평) 규모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병동 해마루는 반개방형 병동이다. 병동 입구 문을 제외하고는 환자들이 병실과 병동 안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병동이라는 말이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환자들의 외출도 허용된다.

병동 입구도 생각했던 이중, 삼중의 철제문이 아니다. 다른 병동 출입문과 같은 나무로 돼 있어 표지판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병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료진의 출입카드가 필요하다. 입원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평상시 안쪽 문은 잠겨 있다.

커다란 화장실 표지판은 환자들의 건의로 이뤄졌다. 해마루 의료진은 환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일주일 뒤 조치 상황을 알려준다.
커다란 화장실 표지판은 환자들의 건의로 이뤄졌다. 해마루 의료진은 환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일주일 뒤 조치 상황을 알려준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에 휴식공간인 커다란 홀이 있고 여기엔 소파, 간단한 운동기구, 컴퓨터, 의료진 업무공간 등이 있다. 흔히 정신과 병동 하면 철문으로 둘러싸인 음침한 공간과 온몸이 꽁꽁 묶인 환자가 떠오르지만 이곳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병실과 병동을 돌아다니며 휴식을 취하고 책도 읽고 TV를 본다.

쇠창살, 감금, 편견, 3無 병동

해마루 병동은 6인실 3개, 4인실 2개, 1인실 1개로 돼 있다. 이 중 어느 병실도 쇠창살은 보이지 않는다.

병동 복도에는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언뜻 보기에 걸린 미술품들이 유리로 장식돼 있고 자칫 감정 조절이 힘든 환자들이 유리를 부수기라도 한다면 다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혜정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간호 팀장은 “환자의 기분 전환 등을 위해 벽에 미술 작품들을 전시한 것으로 환자 사고를 우려했던 부분”이라면서 “하지만 막상 작품을 전시한 뒤 호응이 좋아 우려한 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복도에 걸어놓은 미술 작품.
환자들의 기분 전환을 위해 복도에 걸어놓은 미술 작품.
복도 끝에는 강화유리로 된 통유리창이 있다. 2층이라 높지 않은 위치에서 주변을 관망할 수 있다. 환자들은 시간을 정해 의료진 동반 하에 병원 주변을 산책한다. 간혹 혼자 산책을 원하는 환자도 있다. 그러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송후림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년에 한두 명 정도가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대개 가족과 경찰에 연락해 찾는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예민한 환자들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며 “환자의 자유 의지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라도 억지로 단체 산책을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동 안쪽 면담실엔 보안요원 2명이 서 있었다. 보통 이렇게 보안요원이 병동 안에 상주하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날은 환자와 면담을 하던 보호자가 감정이 격해지고 언성을 높여 환자의 안전을 위해 보안요원이 올라온 것이라고 의료진은 설명했다. 환자가 간혹 자해를 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돌발행동을 할 때는 매뉴얼에 따라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

로비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자.
로비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환자.
해마루 병동에서는 환자가 원하면 컴퓨터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다. 환자의 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해마루 의료진은 바쁘다. ‘환자 안전점검 및 위해도구 예방 점검 체크리스트’를 자체 개발해 30분∼1시간 간격으로 확인한다. 송 교수는 “7년여 동안 쇠창살과 감금이 없는 병동을 운영하면서 환자의 폭력성이 많이 줄었다”며 “이 외에도 자살, 자해, 탈출 시도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환자 맞춤 치료, 의사 상담은 수시로

해마루엔 총 29병상에 5명의 정신과 전문의, 8명의 레지던트 등 총 13명의 의사가 치료를 담당한다. 환자와 의사의 비율이 약 2 대 1인 셈이다. 그 외에도 간호사 11명, 치료사 11명, 자원봉사자 2명과 심리치료사, 예술치료사, 임상병리사, 정신사회복지사 등의 의료진이 치료를 돕는다.

6인실 병실, 환기를 위해 열리는 작은 창문은 환자 안전을 위해 위쪽에 설치돼 있다.
6인실 병실, 환기를 위해 열리는 작은 창문은 환자 안전을 위해 위쪽에 설치돼 있다.
입원환자들은 대개 △현실 검증 능력이 떨어지는 강박증, 공격성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 △중증도 이상의 기분조절장애 환자 △자해·자살의 위험이 있는 우울증 환자 △치매환자 등이다. 환자의 특성에 따라 스트레스, 불안관리훈련, 대인관계훈련, 예술치료, 오락요법, 약물요법 등으로 맞춤 치료한다.

입원 치료가 결정되면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환자에게 치료계획과 현재 치료단계, 향후 치료 전개, 예상 퇴원 시점 등을 설명하고 환자의 생각과 희망 등을 듣는 시간을 갖는다. 그 후에도 의사와 간호사, 정신사회복지사, 환자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다학제 집담회’를 통해 환자의 치료 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치료 상황도 수시로 체크한다.

상담은 정해진 시간 외에도 환자가 요청하면 수시로 이뤄진다.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마루의 많은 치료들이 개인 맞춤형으로 진행된다.

특히 요일마다 집단 치료, 재활 치료 등 다양한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해 정신적인 안정과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이 중 인기 있는 예술치유 프로그램은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위탁 운영하고 있는 예술치유센터에서 파견된 전문 치료사가 진행한다. 해마루의 입원 치료는 환자의 빠른 회복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2주 정도 입원 후 퇴원한다.

송 교수는 “해마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건물 2층에 위치한 정신과 병동으로 고층에서 느끼는 불안감이나 투신에 대한 충동을 사전에 억제하는 심리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 확보로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입원을 시키는 가족들의 죄책감도 한결 덜어준다”고 덧붙였다.

통원 형식의 입원 병동 별마루

해마루는 낮 병원인 별마루를 별도 운영함으로써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원활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다.

별마루는 낮 시간 동안만 통합적 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통원 형식의 입원 치료프로그램이다. 낮 병원 입원 대상자는 정신분열증이나 기분장애와 같은 재발이 잦은 정신질환자들로 기질성뇌증후군, 불안장애, 정동장애, 공황장애, 강박장애, 불면증, 알코올의존증, 사회공포증 및 대인공포증, 우울증 환자 등이다. 이들에게는 외래치료보다 더 집중적인 ‘정신사회재활치료’를 제공한다. 의료진은 약물치료와 함께 면담치료로 환자가 스스로의 증상을 알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 통해 위축돼 있는 환자들이 사회적 고립을 극복하고 사회복귀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낮 병원 치료에는 정신과 전문의, 간호사 등의 전문 의료진과 임상심리사,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가 팀을 이뤄 참여한다. 치료 프로그램은 개별상담 및 가족상담, 정신건강 교육, 집단치료, 사회기술훈련, 스트레스관리훈련, 무용, 연극, 음악치료, 사회적응훈련, 가족 교육 및 가족 치료 등을 비롯해 자치회의와 웰니스 등이 포함돼 있다.

송 교수는 “해마루가 환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데에는 충분한 의료진을 확보하고 환자 중심의 시설을 확충하려는 경영진의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 선정위원 한마디 ▼

“환자 안전-의료 질 관리 돋보여”

구홍모 의료기관평가인증원 환자안전본부장

“우리나라 최초로 대학병원 내 반개방형 정신병동이다. 2010년부터 쇠창살, 감금, 편견을 없애고 쾌적하고 편안한 입원 환경을 만들어 휴양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병원에서도 좋은 위치인 2층에 정신과 병동을 만든 이유는 탈출이나 자살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환자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적극적으로 투자한 점이 돋보이는 병원이다. 환자 안전과 의료 질 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경영진의 소신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병원이다.”

한진우 대한한의사협회 대변인
“정신과 병동은 혹시 있을지 모를 환자 돌발행동에 대비한 매뉴얼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반개방형이기 때문에 환자 사이에 다툼도 발생할 수 있다. 해마루는 다툼 시 의료진의 중재에 협조한다는 환자 동의서를 받는다.”

다양한 요일별 특별 프로그램

월요 치료모임, 치료진 동반 산책, 근육이완 운동, 치료계획 및 평가모임, 인지재활치료, 산책, 증상 및 약물관리, 노래

대인관계 훈련, 음악치료, 중독 집단 인지치료, 정신건강 교육, 레크리에이션

표현예술치료, 치료진 동반 산책, 노래방, 이완요법, 종교활동, 대인관계훈련방

병동회의(다학제집담회), 직원회의(집담회 내용 관련 협의), 마음 다스리기, 중독집단치료

미술요법, 치료진 동반 산책, 문학치료, 마음챙김명상, 인지치료, 미술치료, 사이코드라마

가족 집단치료, 정신건강 교육, 노래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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