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진짜 전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4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사람들은 흔히 전문가 앞에서 기가 죽습니다. 나보다 그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많이 쌓았으니 당연히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나는 그들에게 배워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겪어 보면 좀 이상합니다. 어느 한쪽을 깊이 안다는 것은 다른 쪽에 대해서는 평균치보다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자타가 전문가로 인정한다는 사람이 아주 상식에 벗어나는 말을 되풀이해 사회 갈등을 촉발시키기도 합니다.

저도 전문가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수면의학 전문의, 정신분석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병원 6층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 걸어 보니 세상은 전문가들로 넘칩니다. 이런저런 것들을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수도 없이 많습니다. 겸손해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전문가들 중에 상당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이 그 분야의 전부라고, 더 이상은 새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이 보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지식과 경험을 넓게, 깊게 가져가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것에 집착하며 새로운 것에 저항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의 전문성도 훼손되지만 전문가의 말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다중에게도 직간접으로 피해를 줍니다.

사람들은 정신분석가를 가만히 있어도 마음을 읽어내는 ‘도사(道士)’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정신분석가라고 칭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의도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도사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멋있어 보이더라도 그런 사람은 좀 경계하시길 권합니다. 정신분석 과정에서 사람의 마음을 직관으로 읽어내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분석을 받는 사람이 이야기한 내용, 형태, 과정, 전후 관계를 분석가의 머리에서 자료화해 축적된 자료를 기반으로 해석을 하는, 일종의 ‘빅데이터’ 분석입니다. 그러니 감으로 감을 잡는 다른 식의 ‘마음 읽어내기’와는 아주 다릅니다. 정신분석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근거 중심’의 진단 및 치료 행위입니다.

정신분석가도 당연히 사람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만나 본 세계적으로 저명한 분석가들은 대부분 소탈하고 솔직하고 평범하게 보이기까지 해서 정말 놀랐습니다. 도를 통한 것같이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평소의 환상이 깨어졌다면 미안합니다. 이해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의존하거나 따르고 싶은 사람에 관해 환상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은 화장실에도 안 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 물론 수십 년 전, 흘러간 지난 세기에 통하던 순진무구한 이야기입니다.

정신분석가도 여러분처럼 하루 세끼 밥 먹고 할 일 다 합니다. 남 몰래 시달리는 마음의 갈등도 겪고 현실의 고민도 이것저것 혹처럼 달고 삽니다. 프로이트 박사가 정신분석학 초기에 강조했던, 분석 받는 사람의 마음을 완벽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과 같은 분석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배운 분석가라면 분석 과정에서 자신이 지닌 개인적인 문제가 분석 받는 사람에게 되도록 영향을 주지 않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분석가 인증을 받기 전에 수년에 걸쳐 교육 분석을 충실하게 해야 하고 선배 분석가의 도움을 받으며 최소 3명의 환자 분석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정신분석가 인증을 받았다고 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연수교육도 받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분석가 역할을 그만둘 때까지 공부하고 토론하는 모임에 정기적으로 참여해 최신 지견을 익히고 동료 분석가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일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전문가로 높임을 받으려면 피할 수 없는 대가(代價)를 치러야 합니다. 전문가가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방송이나 신문에 자주 등장한다고 반드시 전문가는 아닙니다. 시간, 돈, 열정을 들여 자기 분야에서 쌓은 전문성이 있고 검증 가능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성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이 알려져서 하고 싶은 말들을 거침없이 하는 전문가들 중에 바깥세상과 남들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꾸준히 자기 성찰을 하며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쌓아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셋째, 솔직해야 합니다. 전문가 대접을 받으려면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말이 틀린 것으로 밝혀졌을 때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침묵을 지킨다면 전문가가 아닙니다. 넷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견이 앞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곤란합니다. 다섯째, 역사 인식이 확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의 역사든 개인사든 시간의 흐름과 상황 간의 상관관계를 통찰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여섯째, 윤리의식입니다. 넘으면 안 되는 선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개인적 동기나 파당(派黨)의 이익이 아닌, 공익에 대한 사명을 지켜야 합니다. 전문가가 많은 사회가 반드시 좋은 사회일까요? 아니면 말만 많고, 갈등만 증폭되는 사회일까요?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전문가#빅데이터 분석#자기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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