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동아일보 취재팀은 A초교 6학년 2개 반 학생 46명을 대상으로 담배 광고 인식 실험을 했다. 정부가 추진할 ‘담배 없는 대한민국(Tobaccos Endgame)’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가 청소년 흡연율 ‘0(제로)’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내 청소년의 흡연 시작 연령은 평균 12.7세다. 이번 실험은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의견과 조언을 토대로 설계했다.
○ 초등생마저 유혹하는 담배 광고
취재팀은 학생들에게 ①웃고 있는 고릴라(KT&G 디스 아프리카 골라) ②얼음에 누운 펭귄(KT&G 아이스잭) ③다섯 색깔 구슬(KT&G 안알랴줌) 등 세 가지 광고를 보여준 뒤 첫 인상과 느낌을 적게 했다.
그 결과 ①번 광고를 두고 ‘유쾌하다’ ‘재밌다’ ‘흥미롭다’는 응답이 82.6%(38명)나 됐다. ‘징그럽다’ ‘무섭다’ 등 부정적 반응은 2명에 불과했다.
②번 광고 역시 ‘시원하다’ ‘귀엽다’ 등 긍정적 반응이 70.2%에 달했다. ‘그저 그렇다’ 등 부정적 응답은 5명뿐이었다.
이 그림들이 광고라고 밝힌 뒤 ‘어떤 제품일지’를 묻자 ①광고를 두고 38명(82.6%)이 ‘콜라’라고 답했다.
②번 광고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응답이 19명, ‘주스’라는 응답이 18명 등이었다. 대부분 시원한 먹을거리로 인식했다. ③번 광고에 대해서는 19명이 ‘알약’, 11명이 ‘사탕’이라고 답했다. ‘해당 그림으로 광고한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느냐’고 묻자 각 제품마다 절반 가까운 학생들이 “사겠다”고 답했다.
모든 설문이 끝난 뒤 학생들에게 이 그림들이 담배 광고임을 알리자 교실 안은 술렁였다. 학생들은 저마다 “사기당한 기분”이라며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실험을 지켜본 교사들도 “담배 광고인 줄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학생 중 30%에 이르는 14명은 처음부터 담배 광고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친구들을 위해 실험 중에는 모른 척했다는 것이다. A 군(12)은 “저 그림들, 편의점에서 많이 봤어요. 귀엽기도 하고 맛있을 것 같아 편의점 아저씨에게 ‘이 광고가 뭐냐’고 물어보기도 한걸요. 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이가 어려 살 수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캐릭터를 활용한 담배 광고의 효과는 강력했다. 담배 광고임을 밝혔음에도 실험이 끝난 뒤 학생 중 22명은 이 광고들을 봤을 때 담배 맛이 “달콤할 거 같다” “시원하고 상쾌할 거 같다”는 등 긍정적으로 답했다.
○ 학교 주변 편의점에서 100% 담배 광고
이 실험은 청소년들이 얼마나 쉽게 담배 광고에 영향을 받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청소년들이 거의 매일 가는 편의점 계산대 뒤에는 화려한 색깔과 문양의 담배가 진열돼 있다. 또 계산대 주변에는 현란한 디스플레이 광고나 모형 광고 등 자극적인 담배 광고가 넘쳐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10월 학교 주변 200m 내 편의점 1235곳을 포함해 담배소매점 2941곳을 조사한 결과 2676곳(91.0%)에 담배 광고가 있었다. 편의점은 100% 담배 광고를 했다. 편의점 1곳당 담배 광고는 평균 25개나 설치돼 있었다.
개발원 선필호 책임연구원은 “편의점 속 담배 광고 문구도 ‘놀자’ ‘콕 찍어 짜릿’ ‘영화 같은 맛’ ‘여유에 물들다’ ‘부드러운 손맛’ ‘맛 깡 패’ 등 한번 보면 뇌리에 각인될 만큼 자극적”이라며 “비흡연자들도 자연스럽게 호기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이달 서울 내 편의점을 찾은 청소년과 성인 147명을 조사한 결과 8명 중 1명은 “담배 광고를 본 후 충동적으로 담배를 구매했다”고 답했을 정도다.
특히 고릴라나 펭귄 등 캐릭터를 이용한 광고는 담배를 유쾌한 것으로 인식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성규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해외에서는 캐릭터를 활용한 담배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며 “캡슐이 들어간 가향(加香)담배 역시 5개 맛이 무작위로 들어 있다는 식으로 광고해 청소년이 게임을 즐기듯 담배를 접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소매점 내 담배 광고 규제를 강화하기로 내부 방침을 세운 상태다. 우선 국민건강증진법을 개정해 학교 반경 50m 내(절대정화구역) 편의점 및 슈퍼 등 소매점에서 담배 광고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복지부 정영기 건강증진과장은 “국회와 함께 법 개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편의점 내 담배 진열 자체를 금지하는 제도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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