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회의 취소 후폭풍]文대통령 ‘격노’에 당정 긴장감
“혁신성장 업무를 맡은 기획재정부 직원들은 물론 다른 공무원들도 혁신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혁신성장본부 워크숍’에 예고 없이 참석해 이같이 지적했다. 김 부총리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하면 백전백패” “부처, 민간과 소통하라. 사무실에 없어도 좋으니 전국 돌아다녀 현장 목소리를 들으라”고 질타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보고 내용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규제혁신회의를 전격 취소한 지 하루 만에 당국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 대통령 질타 하루 만에 규제혁신 강조한 정부
이날 워크숍은 당초 기재부가 비공식적으로 만든 혁신성장본부 발대식 자리였다. 기재부 직원 20여 명과 각 부처 혁신성장 담당 공무원들이 참석해 민간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려고 했다.
평소라면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토론회 자리에 김 부총리가 깜짝 방문한 것은 규제개혁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그만큼 답답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지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으로 규제개혁을 총괄할 당시부터 규제건수에 집착한 양 중심의 개혁보다 공무원의 태도 변화를 강조했다. 이날 그의 발언도 보고서만 양산하는 공무원들의 관행적인 업무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워크숍에 참석한 민간기업들도 규제 철폐에 소극적인 공무원의 태도 때문에 사업 기회를 잃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병종 콜버스랩 대표는 “규제와 기존 택시업계의 기득권 때문에 선진국에서 자리 잡은 공유경제 사업을 한국에서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동호 캐시노트 대표는 “개인 정보를 활용한 사업 영역이 무궁무진한데 규제 때문에 많은 창업자가 좌절한다”고 말했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정부가 규제를 하더라도 새롭고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정교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 여당 “생색내기 개혁 말라” 경고
이낙연 국무총리도 규제혁신과 혁신성장의 성과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규제혁신 점검회의 취소 배경을 설명하며 “비슷비슷해 보이는 계획에 치중하면 국민의 체감도는 갈수록 낮아질 수 있다”며 보고에는 ‘계획’보다는 ‘결과’를 더 늘려 달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또한 국회를 향해 “법률이 바뀌지 않으면 행정부가 할 수 있는 규제혁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법안 통과에 협력해 달라고 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소극적 생색내기로 규제 개혁을 해서는 안 된다”며 “공직사회 내 무사안일과 보신주의를 일신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정부 부처를 압박했다.
이 같은 압박에 대해 공무원사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부처 고위 공무원은 “서울과 세종에서 회의가 너무 많고 보고서 요구도 많아 김 부총리의 요구대로 현장을 돌아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이에 앞서 김 부총리와 홍 원내대표 및 부대표단은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취소된 27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비공개 만찬을 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대립적으로 비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올 예결위에서 당과 부처가 협력하기로 했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최혜령 / 장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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