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어제 대기업의 공익법인과 금융계열사가 행사해온 의결권 한도를 5%로 제한하라는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현재는 공익법인은 보유 지분에 따른 의결권 제한이 없다. 특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상장사를 현행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인 회사에서 ‘2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권고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전달받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마련해 8월 중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경영권 방어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특위가 이 같은 의결권 제한 방안을 최종안으로 결정한 것은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확보 방식을 전면 수정하라는 의미로 봐야 한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우회적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정답이 없다는 지배구조나 경영권 승계 방식을 정부가 획일적 규제로 강요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는 이미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추진하면서 민간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정부 여당은 외부세력이 경영권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까지 추진 중이다. 이 때문에 국내 대기업들은 고(高)배당을 요구하는 외국 자본에 휘둘려 투자조차 망설이고 있는 현실이다. 헤지펀드인 엘리엇의 공격을 받은 현대차가 주주가치를 올린다며 1조 원어치 자사주를 소각한 일이 불과 3개월 전에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경영권 방어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이 정부에서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을 급격하게 제한하겠다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막까지 무력화시키고 지배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것과 다름없다. 주요 상장기업의 지분 절반가량이 해외투자자인 상황에 한국 기업이 자칫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주요 경영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도입을 골자로 한 전략산업보호법안을 준비하는 등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대주주나 경영진에게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을 갖추는 상황이다. 한국도 대주주의 사익 편취나 불공정 거래를 막기 위해서라면 사후 규제를 활용하면 된다. 최소한의 경영권 안전망은 확보돼야 기업의 투자와 정상적인 경영 활동도 가능하다. 자칫 기업이 위축돼 한국 경제와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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