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란 차관이 대학에 전화해 수능 확대를 요구할 때랑 달라진 게 도대체 뭐냐. 애먼 시간과 예산만 낭비했다.” (교육 전문가 A 씨)
올 3월 말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선발하는 비율이 낮은 서울 주요 대학 총장들에게 전화를 걸어 수능 확대를 요청해 논란이 됐다. 수능 전형 확대 여론이 커지는데 현행 고등교육법상 대학에 전형 비율을 강제할 수 없다 보니 차관이 직접 총장들에게 전화하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다. 차라리 시간과 예산이 들지 않은 전화 권유가 나았을지도 모른다. 7일 국가교육회의의 권고안은 5개월 전 박 차관의 권유안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은 수능 전형 확대를 명시해놓고 구체적인 비율은 정하지 않았다. 주요 대학이 얼마나 수능을 확대할지가 최대 관심사인데, 이에 대한 답은 피한 채 수능 확대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 대가는 컸다. 교육부→국가교육회의→공론화위원회→국가교육회의→교육부로 ‘폭탄’을 돌리는 동안 교육감부터 학부모까지 교육부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다.
공론화 의제(시나리오)를 만든 전문가들부터 반발했다. 수능 확대를 골자로 한 의제(1안과 4안)를 만든 시민단체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과 ‘우리교육연구소’는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시민참여단 68.5%가 정시 비중이 30% 이상이어야 한다고 답했는데, 정시 확대를 최소 수준에 머물도록 한 권고안을 발표했다”며 “공론화 과정은 교육부의 ‘요식행위’”라고 지적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2안)을 주도한 ‘좋은교사운동’도 “2안 지지 비율이 48%인데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전환을 장기적 과제라고 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불공정하다는 일부 우려 때문에 정시 확대라는 낡은 제도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2022학년도 대입을 치를 당사자인 중학생 학부모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중2 아들을 둔 윤모 씨(42·여)는 “치열한 내신 경쟁으로 수능 확대 요구가 커졌는데, 구체적인 비율을 명시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국가교육회의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대입제도 개편은 국가교육회의가 다룬 1호 안건이었다. 공론을 모으지 못한 공론화위원회는 첨예한 설문 결과에 대한 해석은 국가교육회의의 몫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가교육회의는 압도적인 다수가 지지한 수능 확대만 명시했을 뿐 해석이 필요한 사안은 모두 교육부가 결정하라고 또다시 공을 넘겼다. 국가교육회의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공론화를 통한 정책결정 방식은 촛불 민주주의로 탄생한 우리 정부에서 매우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교육부는 이달 말 수능 과목과 출제 범위, 학교생활기록부 개선방안 등을 포함한 대입제도 개편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수능 전형 비율을 얼마나, 어떻게 늘릴지가 최대 관건이다. 대학에 구체적인 수능 비율을 제시하면 현행법과 충돌하고, 재정지원사업을 통해 수능 확대를 유도할 경우 실효성이 낮다. 교육부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24일뿐이다. 이뿐만 아니라 김 부총리와 교육부는 대입제도 개편에 4개월 동안 수십억 원의 예산을 허투루 쓴 게 아니었다고 성난 민심을 설득할 ‘묘책’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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