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홍진옥]대입제도 개편 실패가 주는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홍진옥 전 인제대 영어교육과 교수
홍진옥 전 인제대 영어교육과 교수
필자가 16년 전 영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였다. 부엌의 가스 기계가 고장이 나서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가스 기사가 와서 잠깐 고치고 갔는데 영국 돈 35파운드(약 5만 원)를 지불했다. 기술만 가지면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회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아직도 일류 대학을 졸업해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 학부모는 내 자식이 다른 사람의 자식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사례로 대학 입학사정관 제도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내놓은 방안이었으나 일류 대학을 선호하고 내 자녀가 특별해야 한다는 우월 의식 때문에 사교육 시장으로 자녀들을 내몰았다. 그렇다면 교육부의 정책은 어떤가? 여론 눈치만 보고 있다. 방과 후 초등학교 영어수업 금지를 발표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후퇴했다. 교육 수요자와 현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의 대입제도 개편안 실패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입 개편 문제에 공론조사를 택한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교육 정책마저 다수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교육 정책의 혼란과 파행은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사회 각계각층과의 소통이 부족하다. 그 증거로 국가교육회의가 교육부에 권고한 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해 반발이 거세다. 일부 시민단체는 공론화위원회 방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다른 시민단체는 공론화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특히 교육단체는 시민단체와는 정반대로 교육부에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촉구했다. 전국 시도 교육감까지 대입 개편안에 강력 반발했다.

둘째, 교육 전문가를 교육 정책 결정에 활용하지 않고 있다. 시민 참여단만 구성할 게 아니라 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다양한 현직 교육 전문가를 참여단에 참여시켜야 하지만 빠졌다.

셋째, 국가교육회의의 역할이 애매모호하고 유명무실하다. 국가교육회의는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위한 중재자 역할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바람직한 대입 개편안 도출에 실패한 것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이론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교육 현장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 검증하는 실무적인 태스크포스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교육의 주체인 교육 전문가와 수요자인 학생들을 외면한 교육 정책 수립은 무의미하다.

넷째, 전시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발표 후수습이라는 악순환만 가져올 뿐이다. 17일 발표한 교육부 대입 개편안에서 정시 확대는 특수목적고, 외국어고, 자율형사립고에 유리하게 됐다. 하지만 학생의 발달과 다양한 진로, 적성에 맞는 활동을 장려한다는 2015년 교육 과정 개정의 발표 목적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이 같은 총체적 문제점 때문에 각계각층에서 반발이 심해지자 교육부가 여론 잠재우기식의 어정쩡한 봉합 정책을 발표했다. 수능 전형 비율 30% 이상 확대는 시민 공론화위원회 설문 조사를 참고했으나 여전히 여론의 반발이 거세고, 수능 절대평가 과목을 영어와 한국사 이외에 제2외국어와 한문을 추가한 것은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을 수용한 것이다. 사회제도와 교육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 현장과 전문성을 중시하고 여러 문제점을 교육 전문가들과 소통하는 교육부의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홍진옥 전 인제대 영어교육과 교수
#대입제도 개편안#공론조사#국가교육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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