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도 ‘불공정행위 중지 청구’ 가능… 재계 “소송 남발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2일 03시 00분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민주당-공정위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 38년만에 대수술

《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해 오던 기업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이 폐지됨에 따라 공정위 고발 없이 검찰 자체적으로 담합 수사가 가능해진다.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소송을 낼 수 있는 금지청구제도도 도입된다. 담합이나 일감 몰아주기 등의 불공정 거래는 근절돼야 하지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이 남발되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
 
○ 고용재난 상황서 기업 옥죄기

21일 더불어민주당과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정협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공정거래법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 도입 38년 만에 전면 수술이 시작되는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가격담합, 입찰담합, 시장분할 등 경성담합(중대한 담합)에 대해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독점하던 담합 관련 조사 권한을 검찰에도 나눠줘 공정거래법에 경쟁원리를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이런 내용의 합의안에 이날 서명했다.

이와 함께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규제 기준은 총수 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와 20% 이상 보유한 비상장사다. 이 기준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 20%로 낮추고, 규제 대상인 계열사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도 이 기준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규제 회사 수가 현행 203개에서 향후 441개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도입이 추진되던 사소(私訴)제도를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마련하기로 했다. 그 일환으로 피해자가 직접 기업의 불공정 행위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어 대기업 순환출자 규제를 강화하고 담합, 시장지배력 남용 위반 기업에 적용하는 과징금의 최고한도를 2배로 올리기로 했다.

○ 자발적 담합신고 감소할 가능성

당정의 이번 합의로 기업들은 큰 압박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장경제를 우선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논의를 미뤘던 사안들이 개정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먼저 전속고발권 폐지로 기업들은 이중 처벌 부담을 안게 됐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형사처벌이 동시에 활성화돼 제재 총량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업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기본적으로 고발에 취약한데, 이중삼중의 옥상옥이 생긴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또 전속고발권 폐지로 자진신고제도(리니언시)가 위축돼 오히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담합을 신고하는 경우가 적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형사처벌과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 전속고발권이 있는 공정위에 담합 행위를 스스로 신고하는 기업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리니언시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담합행위를 적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법 개정을 통해 검찰 수사 사건도 자진신고를 하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거나, 자진신고로 공정위 과징금이 면제된 기업은 검찰도 추가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근거 조항을 명확히 둬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통기업 관계자는 “공정위는 담합이나 불공정 행위에 대해 수사를 많이 해봤지만 검찰은 그렇지 못하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관련 수사를 많이 해본) 공정위보다 검찰에 소명할 때 필요한 법무 비용만 늘어날 것이고 결국 법무법인만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소송 남발 걱정하는 기업들

당정이 밝힌 사인의 금지청구제도 도입도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예를 들어 가맹점주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로 피해를 봤다면 지금은 공정위에 신고해야 금지 처분을 받아낼 수 있지만 앞으론 가맹점주가 직접 소송을 낼 수 있다. 식품기업 관계자는 “사소제도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될 소지가 많아 비효율적인 소송이 빗발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날 당정 합의에 당황하고 있다. 공정위의 사익편취 규제를 위한 지분 요건 강화 방침에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여러 가지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결국 지분을 줄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회사나 산업에 이익이 되는 내부 거래나 투자까지 막는 꼴”이라며 “기업 총수가 국내가 아닌 해외에 투자하게끔 정부가 떠미는 격”이라고 말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황태호·주애진 기자
#불공정행위 중지 청구#재계#소송 남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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