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언의 마음의 지도]마음의 태풍에 버티는 ‘방파제’를 쌓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4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태풍이 옵니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다른 하나가 닥칠 겁니다. 매년 되풀이됩니다. 하늘과 땅이 아닌 우리 마음에도 가끔 태풍이 불어옵니다. 무의식에서 출발한 태풍의 눈은 욕구와 소망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먼바다에서 시작된 태풍의 강렬함이 옆에 갑자기 다가오듯이 생각조차 못 하고 있던 무의식의 심연에 쌓여 있던 혼돈의 에너지가 마음속에서 비바람을 뿌리면 평소에 유지하던 마음의 평정은 깨어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됩니다.

공황장애를 겪어보신 분들은 마음의 태풍이 지닌 강력한 에너지에 동의하실 겁니다. 공황은 극심한 불안이 갑자기 닥쳐옴을 말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이 예상치 않게 몰리는 것이니 마음에 닥쳐온 쓰나미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일단 공황 증상이 느껴지면 혼자 힘으로 견디고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복되거나 심해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약물치료로 급한 불을 끄고 정신분석적 정신치료로 공황의 뿌리를 찾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공황장애가 견디기 어려운 병이긴 하지만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해리(解離)라고 하는 정신 증상은 문자 그대로 통합된 자기를 한동안 떠나 잃어버리게 하니 위험합니다. 공황장애나 해리장애를 보면 무의식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태풍의 피해를 줄이려면 재난본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이 준비하고 조심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강력한 바람과 물의 힘을 잘 막아 내려면 애를 써야 합니다. 마음의 태풍에서 살아남는 방법도 결국 마음의 균형과 심리적 방어기제에서 찾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자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아의 힘이 건강하고 강한 사람은 어쩌다가 마음에서 태풍이 발생해도 잘 견디고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여린 성격의 사람은 마음의 태풍을 온 마음으로 막아도 잘 견뎌내지 못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니 평소 자아의 기능을 튼튼하게 하고 다양하고 건강한 방어기제를 확보해 놓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피라고 하는 방어기제는 피해야 합니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무조건 벗어난다고 해도 자아가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감당할 만한 작은 심리적 부담에 자신을 반복 노출시켜 단련해야 자아가 강해집니다. 장마철에 늘 준비하고 연습해야 태풍이 닥쳐도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대비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투사(投射)라고 하는, 내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려서 벗어나려는 방어기제도 비생산적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제공되는 배움의 기회를 버려버리는 어리석은 방편입니다. 건강한 방어기제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마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갈등을 승화(昇華)시켜 사회적으로 용납되거나 존경받는 직업을 선택하는 방법입니다. 마음에서 끊임없이 분출되는, 오염시키고 싶은 욕구를 화가나 도장공이 되어, 자르고 깎고 싶은 소망을 목공이나 조각가가 되어 실천한다면 나도 좋고 남도 좋지 않겠습니까! 공격적인 성향을 합법적으로 칼을 쓸 수 있는 직업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외과의사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분들도 잘 사는 겁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자신의 마음을 평정 상태로 되돌리는 데 그런 말들이 도움이 됩니다.

자아의 힘만이 태풍을 견디는 유일무이한 방비책은 아닙니다. 양심과 도덕 그리고 이상(理想)의 집합체인 초자아 역시 마음의 태풍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내 인생의 원칙을 확고하게 세우고 살아온 사람은 마음에 풍파가 일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원칙에 따라 대응합니다. 그런데 평소 삶의 원칙 없이 그때그때 살아온 사람은 큰 바람이 불면 흔들려서 넘어지기 쉽습니다.

세상에 욕구와 소망이 없는 인간이 있을 수 있나요? 적절한 욕구, 적당한 소망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지나친, 잘못된 욕구와 소망은 큰 바람을 내 마음에, 남의 마음에 일으켜 결국 나를 넘어뜨리고 남에게도 피해를 줍니다.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은 재료를 적절하게 넣어야 하고, 병을 치료하는 약과 주사도 적정량을 투여해야 하듯이 욕구와 소망도 적정하게 관리해야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므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행히 자기 성찰을 통해 다소 정리할 수는 있습니다. 정신치료나 정신분석도 물론 도움이 됩니다.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고 마음의 태풍이 불어와도 잘 견디려면 평소 무의식의 욕구와 소망을 잘 다스리고, 초자아를 순발력 있고 유연하게 관리하며, 자아의 힘을 기르고, 동시에 현실세계가 돌아가는 흐름을 제대로 배우고 파악해야 합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인생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결국 끊임없이 이어지는 타협입니다. 세상과 쉽게 타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타협’이란 마음의 갈등을 해소시켜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무의식의 욕구와 소망, 초자아, 현실 사이에서 자아가 중재적 역할을 잘 수행해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무의식이 분출하는 마음의 태풍과 현실세계가 우리에게 지우는 짐 사이에서 우리는 오늘도 번민하며 삶을 이어갑니다. 이 또한 지나가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
#마음의 태풍#공황장애#평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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