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개각을 두고 청와대 내부에선 이렇게 입을 모았다. 집권 2년 차를 맞이하며 ‘민생 체감 성과’를 국정목표로 내걸고도 고용 참사와 소득 양극화 악화로 비상등이 켜진 국정운영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얘기다. 당초 2, 3개 부처를 대상으로 한 소폭 교체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던 것과 달리 이번 개각은 장관급 5명과 차관급 4명으로 판이 커졌다. 구설에 오르거나 업무수행평가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장관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중폭 개각으로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 청와대, “심기일전 위한 개각”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개각의 키워드로 ‘심기일전’과 ‘체감’을 꼽았다. 김 대변인은 “심기일전은 문재인 정부 2기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해보자는 의미”라며 “체감은 그동안 뿌려놓은 개혁의 씨앗을 바탕으로 속도감 있게 성과를 내고 국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민생 분야에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체감 성과를 내는 데 부진한 장관들을 교체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날 개각에는 장관들에 대한 업무수행평가 결과가 중점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캠프나 시민단체 출신으로 개혁성이 뚜렷하지만 정책 실행 능력이 낮은 인물들을 대폭 물갈이했다는 뜻이다.
이는 6·13지방선거 이후 문 대통령이 집권 2기 정책 방향을 ‘실사구시’로 잡으면서 어느 정도 예고된 기조였다. 문 대통령은 휴가 후 열린 이달 초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실사구시적인 과감한 실천이 필요하다. 계속 머뭇거려서는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들께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질책한 바 있다.
교체된 장관들은 줄곧 정책 혼선을 야기하고 각종 구설을 낳았다. 올 초 유치원·어린이집 영어교육 금지, 가상화폐 대응 혼선으로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한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최저임금 인상 부작용과 재활용 쓰레기 대란, 대입제도 개편,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 등 잇따른 실책으로 이제 50% 선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 특히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책 혼선을 해명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청와대 내에선 “장관들이 불 지르고 대통령이 일일이 꺼야 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원래 한번 쓴 사람은 잘 바꾸지 않는다. 미국처럼 오래 함께 일하며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장관을 두고 싶다는 뜻이 강했지만 잇따른 논란으로 더 이상 함께 일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 커지는 정책불신에 관료, 정치인 조기 전진배치
이번 개각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인과 관료들을 전진 배치한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정치인 관료는 통상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국정 운영 동력이 약해지는 정권 후반부에 중용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집권 2기에 정치인과 관료 카드를 꺼낸 것은 문재인 정부 정책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비판이 커지고 야당의 공세가 거센 만큼 실력이 검증된 인물들을 발탁해 국정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번 개각으로 문재인 정부 내각은 관료·전문가 출신이 6명, 정치인 출신은 8명이 포진해 전체 장관(18명)의 80%에 육박하게 됐다.
특히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을 놓고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의 갈등으로 사의를 표명했다는 논란까지 낳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는 유임 의사를 재확인하는 대신에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 등 핵심 경제부처에 정통관료 출신을 배치했다. 진보진영 시민단체나 대선캠프 출신 교수들로 기울어져 있던 경제부처 장관의 균형을 맞춘 셈이다. 지난해 대대적인 적폐청산 작업에 집중했던 만큼 이제는 부처 장악력이 뛰어나고 안정적인 관료 출신으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구성이다.
청와대는 “아직 인사 검증이 끝나지 않아 이번 발표에 포함되지는 못했지만 1, 2주 내에 한 자리 정도 추가 인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혀 후속 인사를 예고했다. 장관이 교체될 부처로는 환경부가 유력하게 꼽힌다.
개각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생 중심, 적재적소 개각을 환영한다”고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야당은 ‘실정 가리기용 개각’이라고 혹평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불과 1년 만에 대한민국을 혼돈의 도가니로 만든 해당 부처의 장관을 이제야 교체하는 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개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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