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해수부, 한일어업협정 무력화 대비한 어민 지원예산 첫 책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03시 00분


“日에 끌려가는 협상 안한다” 배수진

일본과의 이견으로 3년째 갱신하지 못하고 있는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해 해양수산부가 ‘장기전’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이에 따른 어민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내년에 대체어장 조사 등에 투입할 103억 원을 처음으로 책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일어업협정이 무력화 단계로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사진)은 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일본에 끌려가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 협상에 매달리지 않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의 첫걸음으로 피해 어민들을 지원하는 ‘엑시트플랜 3종 세트’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해수부는 내년에 △어선 감척 지원 243억 원 △휴어제 운영 지원 32억 원 △대체어장 자원조사 지원 21억 원 등 총 296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올해 예산에 포함됐던 어선 감척 지원금 193억 원을 감안하면 협상 결렬 대비용으로 103억 원의 지원 예산을 새로 확보한 것이다. 특히 휴어제와 대체어장 자원조사 지원에 예산이 배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 장관은 “협정 자체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파기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과 일본은 1998년 새로 맺은 신한일어업협정에 따라 상대국 배타적경제수역(EEZ·영해 기선으로부터 200해리의 수역)에서 조업이 가능한 어선 수 등을 두고 매년 어업협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2016년 6월 협상이 결렬된 뒤 3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도 6월까지 6차례 협의가 이뤄졌지만 이후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김 장관은 “협정은 유지하되 그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퇴로를 마련해 가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일본은 수산자원 고갈과 우리 측 어선들의 불법 조업을 이유로 자국 수역에 입어하는 우리 어선 수를 대폭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민간 자율로 진행하던 독도 부근 동해중간수역 내 교대조업 협의를 국가 간 입어협상과 연계하려 하고 있다. 한국은 중간수역은 국가 간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협상 결렬에 따른 피해는 태평양 어장을 가진 일본에 비해 한국이 훨씬 크다. 이런 약점을 아는 일본이 이미 합의한 갈치어선 규모를 더 줄이라는 식의 요구를 하며 버티고 있다.

신한일어업협정은 독도가 아닌 울릉도를 우리 영해의 기선으로 삼아 체결 당시부터 독도 영유권 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수년째 협상이 결렬되자 일부 어업인은 “아예 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체결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협정을 파기하고 다시 추진해도 EEZ에 대한 양국 의견차를 좁히기 어려워 실익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협정은 유지하되 여기에 매달려 굴욕적인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국내 어업의 의존도를 낮추는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협상 타결에 급급해 일본의 요구를 자꾸 들어주다 보면 향후 독도 영유권 분쟁 시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간수역 내 민간 협상을 국가 간 협상과 연계하자는 일본의 요구에도 이 같은 노림수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류정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혹시라도 추후 협정을 폐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대등한 관계에서 재협상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해수부#한일어업협정#무력화 대비#어민 지원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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