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성철]기밀도 없는 ‘심재철 논란’… 북핵처럼 화끈 정치로 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03시 00분


전성철 정치부 차장
전성철 정치부 차장
애들 싸움이나, 부부 싸움이나 발단은 시시껄렁한 일인 경우가 많다. 뭔가 물어봤는데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요즘 태도가 이상하다거나 하는 그런 식이다. 그런 사소한 싸움일수록 쉽게 끝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명분 또는 도덕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과거 일까지 꺼내며 큰 상처를 주려고 덤비기 때문이다.

정부와 야당이 최근 싸우는 모습을 보면 나랏일 하는 분들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국회부의장 출신인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청와대와 정부 부처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 공개 문제를 두고 벌인 언쟁이 그렇다.

심 의원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마지막 영결식이 열린 지난해 11월 20일 심야에 청와대 직원들이 바(Bar)에서 업무추진비를 썼다”고 폭로하자, 김 부총리는 “의원님께서 국회 보직을 하실 때 주말에 쓰시고 해외 출장 중 (국내에서) 유류비를 쓴 것과 같은 기준으로 봐 달라”며 맞불을 놓았다. 같은 날 오후 청와대는 “서울 종로구의 기타일반음식점 ‘블루○○○’에서 4만2000원을 결제했다. 정부 예산안 민생 관련 시급성 등 쟁점 설명 후 관계자 2명이 식사를 했다”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이 정도면 가위 야당과 정부의 전면전이다.

이쯤에서 이번 싸움의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달 중순 기재부는 심 의원이 정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dBrain)에서 정부 예산정보 수십만 건을 허가 없이 열람하고 유출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기재부는 심 의원의 이런 행동이 “국가 안위에 심대한 지장을 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요란스럽기는 심 의원도 만만치 않았다. 심 의원은 “국민 세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한 ‘횡령’이라고 간주할 만한 것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업무추진비를 쓸 수 없는 업소 등에서 카드를 썼다며 정면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켜본 결과로는, 양측의 주장은 모두 틀렸다. 심 의원은 수차례 청와대를 비롯해 힘 있는 정부 부처들이 사용한 업무추진비 사용 기록을 공개했다. 하지만 심 의원의 폭로 중에는 일부 국민 눈높이에 어긋나는 부분은 있어도 딱히 큰 비리라고 할 것은 없었다.

기재부 주장도 현 시점에서 볼 때는 공갈포에 가깝다. 업무추진비라는 것이 성격상 사용 명세가 알려지는 게 껄끄러운 자료라고는 하지만, 심 의원이 공개한 내용 중에는 ‘국가 안위에 심대한 지장을 줄’ 국가기밀 같은 것은 안 보인다.

사정이 이런데도 양측은 서로를 검찰에 고발한 채 끝까지 가보자는 분위기다. 나도 상처를 입겠지만, 상대가 더 크게 다칠 거라는 식이다. 그 덕분에 부동산대책, 국민연금 개혁, 탈원전 정책 등 시급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런 판은 어느 한쪽이 먼저 통 큰 모습을 보여줘야 끝난다. 가령 청와대가 “심 의원의 폭로는 유감스럽지만 국정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해 검찰 고발을 취하하겠다”거나 그 반대로 야당이 손을 내미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다.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이번 싸움의 패자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최근 우리는 남북 관계에서 봤다. 당장 전쟁이라도 할 것 같던 북핵 문제는 김정은을 판문점으로 불러내 미국과 협상하도록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노력 덕분에 전환점을 맞았다.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국민들이 그런 화끈한 정치를 바란다는 걸 보여주는 숫자다.
 
전성철 정치부 차장 dawn@donga.com
#심재철#업무추진비#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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