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지난 한 해 동안 세계시장에 1040만 대의 자동차를 팔아 296조 원의 매출을 올렸고 25조 원을 순이익으로 남겼다. 일본 전체 기업을 통틀어 압도적으로 돋보이는 경영실적이다.
일본 주간지 슈칸겐다이가 지난해 10월 ‘만약 도요타가 망한다면, 일본 경제에 이처럼 가혹한 일이 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자회사를 포함해 도요타자동차는 36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3만5000개가 넘는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일본 노동인구의 3%에 해당하는 140만 명이 도요타 관련 일자리 덕분에 먹고산다. 만약 도요타가 망하면 직원 가족들을 포함해 500만 명의 생계가 끊기고,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4%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잡지는 추산했다.
이처럼 일본 경제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고, 깐깐한 품질 관리와 효율적인 생산 관리 분야에서 ‘교과서’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
오너 4세로 도요타자동차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의 지분은 0.15%에 불과하다. 도요다 일가의 지분을 모두 합해도 2% 안팎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도요타의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는 이유는 도요타자동차, 도요타자동직기, 덴소, 아이신정기, 도와부동산 등 핵심 계열사 간 상호출자에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자동차는 자동직기의 1대 주주이고, 자동직기는 자동차의 2대 주주(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1대 주주)다. 또 자동차는 덴소의 1대 주주이고, 덴소는 자동차의 6대 주주다. 자동직기는 덴소와 아이신정기의 2대 주주이고, 덴소와 아이신정기는 각각 자동직기의 2대, 7대 주주다. 덴소는 아이신정기의 3대 주주, 아이신정기는 덴소의 7대 주주다. 이런 방식으로 도와부동산은 자동직기 덴소 아이신정기 3사와 모두 상호출자 관계를 맺고 있다. 이 밖에 도요타통상 도요타방직 등도 핵심 계열사들과 상호출자 또는 순환출자 관계를 맺고 있어 지분 관계가 거미줄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다.
도요타의 지배구조에 대해 지금까지 일본 안에서는 큰 시비가 없었다. 인위적으로 뜯어고치려는 시도도 없었다. 하지만 도요타가 만일 한국기업이었다면 사정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 기준으로 보면 도요타는 지구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기업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자산총액이 10조 원이 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전면 금지돼 있다. 순환출자(A기업이 B기업의 주주가 되고, B기업은 C기업의 주주가 되며, C기업은 A기업의 주주가 되는 방식)는 일정한 한도 안에서 허용돼 왔지만 공정위가 서슬 퍼런 경제검찰의 권력으로 자발적인 해소를 압박하고 있다.
한국의 공정위는 상호출자나 순환출자가 마치 절대악이나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런 지배구조를 갖고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이 될 수 있고, 수백만 명을 먹여 살리는 데 공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도요타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가 시계를 거꾸로 돌려 상호출자를 다시 허용한다거나 기업들이 순환출자를 늘리도록 유도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의 지배구조에 유일한 모범답안이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대기업에 대해 정부의 입맛에 맞는 획일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강요된 공정위 장단에 대기업은 마지못해 춤추고, 실속은 엘리엇과 같은 해외투기자본이 챙기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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