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회 초년생이던 브라이언 체스키는 샌프란시스코의 임대주택에서 친구와 함께 생활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절인데, 하루는 집주인이 체스키에게 집세를 대폭 올리겠다는 통지를 해왔다. 체스키는 한 달분 집세라도 벌어보자는 생각으로 콘퍼런스에 참석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신이 사는 집 한구석과 간단한 침구,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서비스의 전부였다. 현재 기업 가치가 43조 원이 넘는 에어비앤비의 출발점은 사소한 아이디어였다.
아마존도 비슷하다. 시작은 제프 베이조스의 차고에 차려진 초라한 온라인 서점이었다. 베이조스가 주문받은 책을 우체국으로 직접 부치러 갔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혁신기업의 대명사로 통하는 곳들의 혁신이라는 것도 뜯어보면 사실 별것 아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만큼이나 흔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혁신” 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기술과 공상과학,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 등을 떠올리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그 잘못된 생각의 범주 안에는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도 포함된다. 지금까지 발표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현 정부의 혁신성장이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등 플랫폼 분야와, 미래자동차 드론 에너지신산업 바이오헬스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스마트팜 핀테크 등 선도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사람보다는 기술, 현재보다는 미래에 치우쳐 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피부에 와 닿지 않고 공허한 말잔치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혁신적인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과잉인 세상이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에서만 한 해 동안 21만3694건의 특허가 출원됐다. 세계적으로는 288만8800건에 이른다. 매년 수백만 건씩 쌓이는 혁신 중 극히 일부만이 비즈니스에 활용된다. 개똥처럼 흔한 혁신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은 기업가정신이라는 촉매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과 관련한 회의가 있을 때마다 “성과가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혁신성장의 성과가 나지 않는 이유는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이나 투자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혁신성장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은 반기업 정서와 각종 규제에 짓눌려 기업가정신이 숨쉴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 정부가 규제 완화 노력을 아주 안 한 것은 아니다. 산업자본이 인터넷은행에 출자할 수 있는 길을 넓혔고, 특정 지역 안에서 특정 산업의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각종 규제의 적용을 일부 유예해 주는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입법 작업도 마무리했다. 벤처기업 창업자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차등의결권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그 나름대로 애는 쓰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경쟁에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이나 중국은 제쳐두고 동남아시아와 비교해도 한국의 규제완화 노력은 아주 감질나는 수준이다.
혁신성장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의 하나로 유니콘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벤처기업)의 수가 있다. 중국에서는 일주일에 2개꼴로 유니콘기업이 탄생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2015년 이후 지금까지 단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스포츠와 비즈니스의 세계에는 공통되는 철칙이 하나 있다. ‘남과 같이 해서는 남보다 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동일 선상에서 달리는 주자(走者)도 그럴 텐데, 하물며 후행(後行) 주자는 어떻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이 걱정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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