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기 경제팀을 출범시킨 뒤 ‘문재인의 두 남자’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책임 총리로 자리매김한 이낙연 국무총리와 ‘청와대 2인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얘기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 주자 1위를 달리는 이 총리는 최측근인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영전하면서 어느 때보다 주가가 올라가고 있다. 청와대가 이 총리의 제청에 따른 인사라고 밝히면서 더욱 힘을 실어준 데 따른 것. 문 대통령은 향후 정상 외교 중 일부도 이 총리에게 맡기기로 했다.
임 실장은 차기 여론조사에선 이 총리에 한참 밀려 있다. 6일 리얼미터 조사에선 이 총리가 여권 주자 중 18.9%로 1위였지만 임 실장은 3.3%에 그쳤다. 여기에 ‘DMZ 선글라스’ 이벤트로 ‘자기 정치’ 논란이 벌어진 뒤에는 잠시 몸을 낮추고 있다. 하지만 남북 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으로서 정부의 제1 현안인 남북 및 북-미 대화 이슈는 여전히 문 대통령을 실무적으로 대리하고 있다. 주변에선 “임 실장이 청와대를 나가더라도 남북 이슈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다루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문 대통령과의 정치적 거리 역시 여전히 가장 가깝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 총리와 임 실장이 각각 경제 등 내치와 외교안보 현안을 주도하면서 상보(相補)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이해찬 이후 최강 책임 총리 부상하는 이 총리
정부 안팎에선 이 총리가 역대 최강의 실세 총리 중 한 명으로 통했던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 버금가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리는 그동안 ‘김동연-장하성’ 라인을 존중해 경제 현안에 대해선 개입을 자제했지만 홍 후보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경제 챙기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 총리가 경제 영역에서 성과를 내면 차기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인사를 통해 확인된 문 대통령의 강한 신뢰도 이 총리에겐 또 다른 자산이다. 이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냈지만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합류하지 않아 그 후로는 줄곧 친문그룹과 거리를 뒀다. 10년 넘게 ‘비문’이었던 셈.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선 1년여 전부터 전남도지사였던 이 총리를 총리 후보로 검토했다고 한다.
임 실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후속 작업을 진두지휘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올해 내내 확고한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 ‘DMZ 선글라스’ 논란은 임 실장이 현 외교안보 라인 내 정치적 위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비서실장 특성상 총리나 다른 장관들이 공개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도맡는 건 임 실장의 비교 우위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보다 먼저 만나거나 최근 방한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의 비공개 면담 역시 임 실장의 몫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서실장으로서 드러나지 않은 역할과 권한은 알려진 것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안정감의 이 총리 vs 젊음의 임 실장
이 총리와 임 실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16대 국회의원으로 함께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정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이 총리의 강점은 안정감이다. 상대적으로 진보정권 인사들에게 부족한 덕목이다. 문 대통령이 오랫동안 ‘비문’이었던 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도 보수까지 포용할 수 있는 이 총리의 정치적 확장성과 특유의 치밀함을 바탕으로 한 경륜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청와대 관계자는 “취임 후 70차례 이상 진행된 월요일 주례회동에서 이 총리는 10가지 이상의 비공식 의제를 늘 준비한다”며 “필요한 순간엔 대통령에게 제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 대정부질문에서 ‘이낙연 어록’을 만들어가며 야당의 공세를 촌철살인의 화법으로 무력화한 것도 이 총리의 내공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이 총리는 딱히 정치적 계보는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여야 인사들과 잇따라 막걸리를 마시는 광폭 행보를 펼치고 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을 지낸 임 실장은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젊음’이 강점이다. 청와대 입성 후에도 여전히 파격적이면서도 활달하다. 임 실장은 2016년 문재인 캠프의 사전조직인 ‘광흥창팀’을 맡으면서 당시 문 대통령에게 누구도 특정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하지 못할 때 문 대통령과 독대해 결론을 받아내곤 했다. 요즘도 이 총리를 제외하고 가장 자주 문 대통령과 대화하는 건 임 실장이다.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2020년 총선, 더 나아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두 사람의 선택을 주목하고 있다. 둘 다 호남 출신이라 누가 여권의 핵심 권역인 호남에서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차기 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임 실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되면 청와대 이후 행보를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벌써부터 2020년 총선에서 서울 지역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 돈다. 이 총리는 ‘최장수 총리’ 후보로 점쳐지지만 얼마든지 총선에 나설 카드로 거론된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 총리는 곧바로 차기 대선에 뛰어들 수 있지만 50대인 임 실장은 서울시장을 거쳐 차차기를 노리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반면 임 실장 주변에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 차기 대선에 도전하는 게 맞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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