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새벽 서울 종로구 청계천변 국일고시원 화재로 숨진 서른네 살 조모 씨는 세 달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충무로 대한극장 근처에 살다 재개발에 밀려 옮긴 것이다. 월세 32만 원짜리 창문 없는 6.6m²(약 2평) 방. 그는 거기서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꿈을 꿨다.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배달 물품을 분류하며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러다 고시원 다른 방 전기난로에서 발화한 불구덩이를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화재경보기는 안 울렸고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이 고시원으로부터 걸어서 단 1분 거리 청계천 건너편에서 마천루가 시작된다. 17층 빌딩 2개가 붙어 있고, 그 서쪽으로 청계천변을 따라 29층 대기업 본사 빌딩에 이어 36층 오피스·식당가 빌딩, 24층과 14층 은행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거기서 한 블록이 끝나고 그 다음 블록 역시 마천루다. 그 36층 빌딩 꼭대기엔 서울의 청계천 북쪽 지역 대부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형 식당이 있다. 거기선 고시원이 손톱보다 작아 보인다. 이 식당에서 4명이 한 번 식사하는 비용이 조 씨의 고시원 월세 정도다.
조 씨는 고시원으로 퇴근할 때마다 청계천변을 걸으며 한밤중에도 환한 마천루를 올려다봤을 것이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2평짜리 방과 마천루의 어마어마한 차이만큼이나 암담한 현실에 무력감이 들었을지 모른다. 농사짓는 부모에 두 남동생이 있는 조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뒤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우체국에 임시직으로 들어갔다. 성실하게 일한 덕분에 2년 전 월급 170만 원을 받는 무기계약직이 됐다. 그의 아버지는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친 애다.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하다 이렇게 갔다”며 울먹였다. 조 씨는 동남아 등의 외국인 여성과 가정을 꾸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난해서 한국 여성을 사귀기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의 주거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조 씨처럼 고시원에서 지내는 사람은 15만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34.6세, 평균 월 소득은 180만 원이다. 조 씨가 바로 거의 평균이었다. 또 조 씨처럼 이른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 사는 20∼34세 1인 청년 가구가 갈수록 늘고 있다. 서울의 1인 청년 가구 10명 중 3명이 지옥고에 살고 있다.
조 씨가 살았던 고시원에서 청계천변 동쪽으로 네 블록 떨어진 종로5가의 쪽방여관에선 올 1월 20일 새벽 방화로 6명이 숨졌다. 그중엔 서른다섯 살 엄마와 열다섯 살, 열두 살 딸이 있었다. 전남 장흥군에 살던 세 모녀는 서울 여행 중 가장 싼 숙소를 찾아 묵다 참변을 당했다. 1박에 2만5000원이었다. 어려운 형편이라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아빠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지 못했다. 세 모녀가 숨진 방의 창문은 쇠창살로 가로막혀 있었고, 여관 비상구는 밖에서 자물쇠로 잠긴 상태였다. 세 모녀는 탈출구 없는 불구덩이에 갇혀 숨졌다.
이렇게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주거 안전 사망 사고를 어떻게 막아야 할까. 조 씨가 숨진 고시원 앞에는 ‘사회적 타살’, ‘돈 먼저 사람 뒷전’이라고 쓰인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회가 공공재원을 지옥고 등의 주거 안전 개선에 먼저, 대거 투입하라는 촉구다.
그렇게 되려면 많은 세금을 내는 고소득층의 수용 등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상위 1%의 운명은 나머지 99%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튼튼한 바닥층이 없으면 피라미드 정상부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이타주의가 결국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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