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운영의 핵심인 ‘사회적 가치’
이 잣대로 보면 의문이 풀린다… 왜 공공부문 정규직화 강행하는지
공무원부터 월급 깎아 나누면 포용국가 안 해도 양극화 해소될 것
“권력에 중독된 겁니까?”
지난해 4선 출마를 앞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독일 슈피겔지가 측근 인사를 지적하며 던진 첫 질문이다. “노”라는 짧은 답변에 “휴브리스(hubris·오만)를 막고 권력중독에 빠지지 않을 전략을 갖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메르켈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언론에 나오는 비판적 기사들을 읽는다.” 그리고 덧붙였다. “참모들이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내게 숨김없이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의 나라 얘기를 들먹이는 건 “대통령이 왕실장 임명이라는 세간의 비판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지적 때문이다. 김수현 대통령사회수석을 정책실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모자라 ‘다함께 잘사는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새 국가비전의 3개년 계획까지 맡겼다니 기가 막힌 듯했다.
대통령이 비판적 기사를 읽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집단사고에 빠진 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경기침체 경고음도 못 듣거나, 들어도 국정기조엔 문제가 없다고 보거나,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정부가 옳다는 대통령의 신념이 워낙 강해 숨김없이 보고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정부 운영의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 ‘사회적 가치’이고 그 대표적 정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는 ‘사회 경제 등 모든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로 사회적 가치를 정의한다. 전체 효용의 극대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공익과 다르다. 진입장벽 제거 등 경쟁 활성화를 ‘넥스트 자본주의자 혁명’으로 제시한 이코노미스트지의 처방과도 거리가 멀다. 2014년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발의하며 “사회적 가치를 우리 사회의 운영 원리로 설정해야 협동과 상생이 실현되는 사회로 갈 수 있다”고 한 것이 현실로 된 셈이다.
이 사회적 가치의 잣대로 지금까지의 인사와 정책을 들여다보면 모든 의문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효율성과 국가경쟁력 등을 고려한 비정규직이나 성과급제는 있을 수 없는 제도였다. 김수현이 사회수석 때 지휘한 원전 폐기야말로 사회적 가치에 딱 맞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의 상위 개념이므로 그가 경제·사회정책을 통합해 포용국가 비전을 설계하는 정책실장을 맡는 것도 당연했다.
문제는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체제 변혁을 방불케 하는 이 가치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구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사회적 가치는 어떤 시대, 어떤 공동체가 추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도덕국가 조선왕조로 돌아가는 게 아닌 한, 개념을 획정하는 작업이 선재(先在)해야 한다. 기준은 헌법이어야 하지만 아니어도 방법이 없다.
김수현이 9월 ‘포용국가 전략회의’에서 3대 비전으로 소개한 사회 통합의 강화, 사회적 지속 가능성 확보, 사회 혁신 능력 배양에는 ‘사회’가 돌림자로 들어가 있다. 정부가 기회와 권한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국가 권력의 비대화, 관료의 특권화는 불가피해 보인다. 결과적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포용국가 전략은 약탈적 성격을 지닌다”고 양준모 연세대 교수는 우려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정부에서 꽃길만 걷는 집단은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공공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실정이다. 규제권력과 독점업체를 갖고 있으면서 시장원리는 배제하는 공공부문은 거대한 지대추구집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정규직 평균 연봉이 중소기업 3595만 원, 대기업 6460만 원인데(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공무원 평균 기준소득이 연 6120만 원이다(인사혁신처 고시). 상위 10%의 최저선이 6746만 원이니 공무원도 상류층에 속하는 마당에 홍장표 소득성장특위 위원장은 “대기업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줄여 협력업체의 임금 인상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공직자들이 앞장서겠다고 하기는커녕 참 양심도 없는 소리다.
대통령은 양극화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혁신적 포용국가를 국가비전으로 채택했다. 3개년 계획까지 갈 것도 없다. 대통령부터, 공공기관 공귀족부터 봉급 깎아 최저임금 노동자와 나누면 양극화도,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단박에 해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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