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흡연자와 비흡연자 구분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금연담당 의사들에게서 종종 듣는다. 궐련형 전자담배라 불리는 일명 가열담배가 지난해 시판된 뒤 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치아가 누렇게 착색되지 않고 몸에 찌든 담배 냄새가 배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열담배 흡연자 중에는 ‘담배로 담배를 끊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가열담배는 담뱃잎을 태우지 않고 열로 찌는 방식이다. 역한 냄새가 없어 국내뿐 아니라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인기다. 최근 기획재정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열담배는 10월까지 2억6300만 갑이 팔렸다. 전체 담배시장 점유율은 9.1%다. 이런 가열담배의 인기가 금연 열풍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담배회사들은 가열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점을 적극 홍보한다. 캐나다 등에선 금연이 어려운 골초들에게 건강을 위해 전자담배를 권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전자담배는 가열담배 훨씬 이전에 나온 제품인 ‘액상형 전자담배’인데도 일부에선 마치 가열담배도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처럼 호도한다.
가열담배의 유해성을 두고 담배회사와 정부의 공방이 한창이다. 필립모리스는 지난달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궐련형 전자담배 유해성 분석 결과’ 발표 근거에 대한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했다. 식약처는 17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답변서를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하며 법적대응에 나섰다.
국내 금연 관련 학회와 전문가들은 가열담배의 유해성을 적극 알리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대한금연학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어떤 종류의 담배 제품도 건강에 덜 유해한 것은 없기 때문에 흡연자는 건강을 위해 가열담배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담배 제품 사용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전문가들은 가열담배에 포함된 니코틴만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위협한다고 강조한다. 인체에 투입된 니코틴은 혈압 상승 및 심근수축 증가로 심장 질환을 유발한다. 또 심장동맥 혈류의 이상반응과 심장근육세포의 능력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하루에 한 개비라도 담배를 피우면 심장질환과 뇌중풍(뇌졸중) 위험이 크게 증가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는 가열담배의 위험성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빠르게 늘고 있는 가열담배 흡연자들이 냄새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흡연하는 탓에 간접흡연 피해도 상당하다. 담배회사는 ‘가열담배는 배출물에 의한 간접흡연 노출 위험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가열담배에서 배출한 연기는 기체 상태 안에 고체 또는 액체 성분이 포함돼 있는 ‘에어로졸’이다. 이 에어로졸 안에는 니코틴이나 발암물질 등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눈에 잘 보이지 않고 냄새가 심하지 않더라도 일반담배 연기와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제 연구 자료도 충분하다. 이탈리아 국립암연구소 연구팀은 일반담배, 가열담배, 전자담배의 연기 성분을 측정한 결과 가열담배에서도 미세먼지와 발암성 물질인 알데히드 등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배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가열담배 판매량이 증가하는 만큼 금연 시도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피워온 담배를 한번에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연을 돕는 다양한 방법이 있고, 정부는 병·의원 금연치료 지원사업을 통해 흡연자의 금연치료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다. 12주 동안 6회 이내 의료진 상담료와 금연약 비용을 연 3회까지 지원한다.
의사의 금연 권고나 금연상담, 약물치료를 병행할 경우 금연성공률을 최대 7배까지 높일 수 있다. 정부의 금연치료 지원사업 중에는 4박 5일 전문 치료형 금연캠프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문 치료형 금연캠프에 참가한 사람은 2869명이다. 이 중 6개월 이상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1846명으로, 10명 중 6명 이상(64.3%)이 금연에 성공했다.
세상에 ‘좋은 담배’란 없다. 올해 초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가열담배가 건강에 덜 해롭다는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명백한 진실은 하나다. 건강을 위한 최선은 금연이라는 점이다. 일반담배든, 가열담배든 예외는 없다. 일반담배를 가열담배로 바꾸는 건 그저 담배를 끊을 기회를 놓치는 일일 뿐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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