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근로시간 기준 174→209시간으로… 최저임금 더 오르는 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5일 03시 00분


[최저임금 계산에 주휴시간 포함]정부 조삼모사식 절충안 논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등 국무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등 국무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부가 24일 수정해 발표한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언뜻 보면 경영계 요구를 수용한 ‘절충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이 실제 일하지 않은 주휴시간(일요일 휴일수당을 지급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할 수 없다고 수차례 판결했음에도 정부는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 포함해 ‘판례 뒤집기’ 강행에 나섰다. 30년 넘게 이어온 정부 지침(행정해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대신 정부는 수정안에서 노사가 추가로 약정한 유급휴일(토요일)을 근로시간에서 빼기로 했다. 다만 약정휴일수당도 임금에서 제외시켰다. 경영계는 이를 두고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절충안이라고 비판한다. 사업주 입장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다. 만약 법원이 개정 시행령을 수용하지 않으면 노동시장에 일대 혼란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 판례 뒤집은 정부

근로자에게 시급이 아닌 월급을 주는 사업장은 월급을 시급으로 다시 환산해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시급은 월급을 월 근로시간으로 나눠 계산한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내놓은 수정안은 월 근로시간에 주휴시간을 포함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이는 실제 일한 시간만 근로시간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정면 배치된다. 법률과 같은 효과를 내는 판례를 정부 시행령이 180도 뒤집은 것이다. 이것이 수정안의 1차 문제다.

2차 문제는 시행령의 파생효과다. 주휴시간이 근로시간에 포함되면 주 40시간 근로자의 월 근로시간은 209시간(8시간×6일×4.35주)으로 실제 근로시간(174시간)보다 35시간 늘어난다. 만약 월 170만 원을 받는 근로자가 있을 경우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시급 9770원으로 최저임금법(2019년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을 준수한 것이지만 고용부 시행령대로라면 시급이 8134원으로 떨어져 최저임금법 위반이 된다.

결국 내년의 법적 최저 월급은 174만5150원(8350원×209시간)인 것이다. 월 170만 원을 주는 사업주는 대법원 판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정부 시행령 때문에 근로자당 월 5만 원 가까이 무조건 더 올려줘야 한다.

○ ‘조삼모사’ 절충안… 경영계 “달라진 것 없어”


3차 문제는 새롭게 내놓은 절충안에 경영계 요구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휴시간 외에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약정한 휴일을 약정휴일이라고 하고, 이에 대한 수당을 약정휴일수당이라고 한다. 통상적으로 주휴는 일요일, 약정휴일은 토요일이다. 약정휴일까지 보장받으면 주 5일 일했어도 1주일 모두 일한 걸로 치고 임금을 받게 된다.

정부 수정안에선 약정휴일시간은 근로시간에서, 약정휴일수당은 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정부는 노사 간 협약인 약정휴일수당은 논외로 하고 주휴수당을 제대로 주는지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약정휴일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라는 경영계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약정휴일수당을 별도로 계산하고 따로 항목을 만들어 지급하는 사업장이 거의 없다. 이런 사업장은 근로시간에서 약정휴일시간을 제외하면서 기존 월급에서도 약정휴일수당을 일정 부분 빼고 시급을 계산해야 한다. 약정휴일수당으로 얼마나 뺄 것인가도 문제지만 설령 뺀다 해도 분모(근로시간)가 줄어든 만큼 분자(임금)도 줄어 사용주 입장에선 달라질 게 없다. 결국 사용주가 봤을 땐 근로시간만 174시간에서 209시간으로 늘어난 것이다.

○ 계도기간도 결국 ‘미봉책’

일각에선 각급 법원이 최저임금 관련 민사, 형사소송을 처리할 때 위헌명령 등을 통해 개정 시행령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노동시장은 큰 혼란을 맞게 된다. 고용부가 최저임금법 위반이라며 기소의견으로 송치해도 법원이 무죄로 판단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고용부는 “법원도 개정 시행령을 존중해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고용부는 이날 고액 연봉 사업장이 임금체계를 개편할 경우 개정 시행령에 따른 최저임금 위반 처벌을 내년 6월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기업이 상여금 지급주기 변경 등을 통해 최저임금을 준수하려고 한다면 처벌을 유예하겠다는 뜻이다. 초봉이 5000만 원을 넘기고도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된 현대모비스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대기업은 대부분 단체협약으로 상여금 지급 주기를 정하고 있어 이를 변경하려면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 강성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경우 임금체계 개편이 사실상 불가능해 이 역시 현장 상황을 모르는 미봉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상여금 지급 주기를 바꾸거나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격월이건 분기별이건 모든 정기상여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모두 포함시키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월 단위 정기상여금과 숙식비까지만 포함되면서 일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성열 ryu@donga.com·박은서 기자
#최저임금#주휴시간#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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