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머나먼 이주 행렬에 참여해 천신만고 끝에 멕시코-미국 국경에 도달한 중미 출신 이민자 집단(캐러밴)이 희망 없이 가혹한 현실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신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T)는 24일(현지시간) 크리스마스를 앞둔 캐러밴들의 현상황에 대해 “리더도 없고, 희망도 없다”고 보도했다.
국경지대에 수천명의 캐러밴들이 몰려있는 만큼 이들에게 현상황과 향후 대처방안 등을 설명해주면서 적절히 이끌어갈 리더가 없는 게 큰 문제다. 그저 막막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버티며 지내는 수밖에 없다.
LAT는 이민자 행렬이 지난달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에 속속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핸드마이크로 안내하고 조언도 해주던 코디네이터들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캐러밴들은 그들을 이끌 리더도 없는 가운데 좌절감에 빠져 있으며,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티후아나의 엘바레탈 보호소에 두 딸과 함께 있는 과테말라 출신 안드레아 라미레스는 LA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처한 상황을 “마치 부모가 없는 집 같고, 아이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계획도, 희망도 없는 가운데 무질서하게 지내고 있음을 이야기 한 것이다.
이들이 암담한 처지에 빠진 중요한 이유는 과거에 이민자들이 받았던 것과 같은 연민이나 정치적 지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LAT의 분석이다. 지난 2014년의 경우만 해도 이민자들이 국경지역에 도착했을 때 미국과 멕시코 당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캐러밴 규모가 예전의 경우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규모인 데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엄격한 이민자 대책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캐러밴들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은 싸늘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6일 실시된 중간선거 캠페인에서 캐러밴들의 미국행시도를 ‘심각한 침략’이라고 규정하며 성토했다.
이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야당인 민주당과 싸워가며 국경장벽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결국 연방정부 업무가 일부 셧다운(업무정지)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온두라스 출신 호세 모레노스는 “미국에 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갖고 이민 행렬에 가담했다”면서 “이렇게 멕시코에서 멈춰질 것을 알았다면 온두라스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캐러밴은 기약없는 멕시코 생활을 얼마나 더 해야할지 알 수 없다. 더욱이 망명신청자들이 심사기간 동안 미국땅이 아닌 멕시코에서 대기하도록 미국과 멕시코가 합의했기에 열악한 환경에서 무작정 버텨야 한다. 망명신청까지 많이 기다려야 하지만 심사기간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년이 걸릴 수도 있다.
지금까지 멕시코 당국은 캐러밴들 중 300여명을 추방했고, 700여명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왔다. 또한 1000여명이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미국 세관국경보호국은 이같은 숫자를 부인하고 있다.
멕시코 국립고용청에 따르면 캐러밴 중 1000명 이상이 멕시코에서 일자리를 찾았거나 취업 허가를 받았고, 3500여명은 취업비자를 신청했다.
유엔 난민 기관에 따르면, 캐러밴 중 600여명은 멕시코에 망명을 신청했다.
미 정부는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캐러밴 수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10월부터 11월 사이에 미국 망명을 신청한 캐러밴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두 배라는 정도만 밝혔다.
캐러밴이 가장 많이 몰리는 샌이시드로 출입국관리소는 망명신청건 처리량이 2018회계연도에 120% 증가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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