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홍콩을 가는 여행자들이 많다. 선선한 가을 날씨에 거리엔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가 들어서고 건물엔 눈이 휘둥그레질 조명 장식으로 가득하다. 특히 매일 밤 빅토리아 항구에서 펼쳐지는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연말이면 더욱 화려해진다. 옥상 조명 건물 2개가 추가되고 음향 효과가 보강된 것. 올해 마지막 날엔 그 화려함의 정점을 찍을 카운트다운 행사도 열린다. [겨울에 떠난 홍콩] 삼수이포 ‘영웅본색’ 오우삼 감독이 영감 받은 동네
홍콩을 제집처럼 오가며 센트럴의 골목 이름까지 외워버린 여행자라 해도, 이곳 삼수이포의 풍경은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도심의 화려한 빛은 사라지고,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잿빛 건물들 아래로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펼쳐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과 시끌벅적한 홍콩식 전통 시장의 풍경은 친근한 일상이면서도 한없이 낯설다.
삼수이포는 관광객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지역이었다. 1950년대에는 홍콩으로 망명 온 중국 난민들을 수용하던 판자촌이었고, 홍콩 최초의 공공 임대 주택이 설립된 이후에는 서민들의 주거지이자 공업 단지로 역사를 이어왔다.
명품 매장이나 세련된 부티크 하나 없는 삼수이포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젊은 예술가들 덕분이었다. 버려진 공장을 개보수해 ‘아티스트 레지던시’(예술가들의 거주지)로 탈바꿈시킨 JCCAC가 효시였다. 젊은 디자이너와 예술학도들이 삼수이포를 찾기 시작했고, 낡은 거리에는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곳에 흘러든 아티스트들 역시 삼수이포로부터 혜택을 받았다. 가장 보통의 사람들이 오랫동안 만들어온 생활 양식이 예술보다 흥미롭고 풍요로울 때가 있다.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 ‘일대종사’의 전통 의상 디자이너를 발견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 저 유명한 ‘영웅본색’의 감독 오우삼은 자신이 태어난 삼수이포의 풍경들로부터 한없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홍콩 디자인을 세계에 알린 브랜드 G.O.D.의 스튜디오 또한 이곳에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영감’은 삼수이포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일 것이다. 센트럴의 세련된 표정과는 다른, 홍콩의 또 다른 얼굴이 이곳의 거리에 있다.
삼수이포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고 있는 아티스트들과 스쳐 지나고 싶다면, JCCAC나 SCAD 디자인 학교를 거닐어보자. 홍콩의 옛 건축 형식을 제각각 흥미롭게 개조한 두 건물은 미래의 디자이너들로 넘친다.
낯선 향기와 색깔로 흘러넘치는 재래시장 페이 호 스트리트 마켓(Pei Ho Street Market)을 구경한 후, 골목 모퉁이의 노천 식당이나 전통 디저트 ‘띰반’을 파는 가게에서 홍콩식 ‘B급 구르메’를 즐겨 보자.
홍콩 도심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혹시라도 맛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촐한 동네 식당에서 출발해 미쉐린 별 하나를 얻은 후 뉴욕까지 진출한 딤섬 가게 팀호완의 본점이 이곳에 있다.
백종원이 반한 다이파이동(홍콩식 선술집) 맛집인 ‘오이만상’도 있다. 홍콩의 다이파이동은 저녁 무렵 상점들의 셔터가 닫히면 그 앞에 좌석을 펼쳐놓고 요리를 낸다.
195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이만상은 홍콩 5대 다이파이동으로 꼽히는 곳으로,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에서 백종원 셰프가 맥주와 음식을 즐겼던 식당이기다. 요리도 맛있지만, 백종원 셰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국적인 ‘분위기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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