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후 처음으로 낸 성탄절 메시지의 키워드는 ‘나눔’이었다. 정치 입문 후 줄곧 성탄절 메시지에서 강조했던 나눔의 정신을 1년 만에 다시 꺼냈다.
문 대통령은 25일 1년 만에 재개한 성탄절 메시지에서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를 인용해 시 속에 녹아든 할머니의 따뜻한 나눔의 마음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인용한 박노해 시인의 ‘그 겨울의 시’는 총 5연으로 구성돼 있다. 추운 윗목에서 몸을 간신히 부지하면서도 장터의 거지부터 뒷산 노루까지 걱정하는 할머니의 따스한 나눔의 정신을 그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중에서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는 굶어죽지 않을랑가 /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후략)’ 등 3연을 메시지에 인용했다.
문 대통령은 “성탄절 아침 우리 마음에 담긴 예수님의 따뜻함을 생각한다”며 “애틋한 할머니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다. 나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박노해 시인의 시 가운데서 ‘그 겨울의 시’를 낙점한 배경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우선 대통령 당선 후 첫 해인 지난해 성탄절에 줄곧 내오던 성탄 메시지를 생략했다가 올해 다시 재개한 것과 해당 시가 수록된 시집의 사연이 닮은 꼴을 하고 있다.
해당 시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중동국가에서 평화 활동을 벌인 박노해 시인이 12년 만에 발간한 시집에 수록됐다. 오랜 기다림 끝에 2010년 10월 발간된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가운데 110번째로 수록된 시가 바로 ‘그 겨울의 시’다. 멈췄다 재개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성탄절 메시지와 배경이 닮아 있다.
정치 입문 후 줄곧 성탄절 메시지를 내오던 문 대통령은 지난해 건너 뛰었다. 성탄절을 나흘 앞두고 터진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로 고통받는 지역주민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문 대통령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과 남북한 화해·평화를 기원하는 천주교·개신교 연합 성탄 음악회’에만 참석해 종교 지도자와의 사전 환담을 나누는 것으로 메시지를 대신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여러 종교가 함께 성탄을 축하하고 사회의 희망을 나누는 의미가 뜻깊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제천 화재를 언급하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바꿀 수는 없지만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 가자”고 했다.
1년 만에 재개한 성탄절 메시지의 방점도 매년 그랬듯 나눔에 찍혀 있다. 할머니가 추운 겨울 장터 거지의 추위를 걱정했듯 이웃을 돌보는 여유를 갖자는 게 문 대통령의 메시지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맞았던 2016년 성탄절을 제외하면 문 대통령의 성탄절 메시지는 ‘나눔의 정신’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2013년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은 12월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탄 밤 미사 마치고 돌아와 포도주 한잔 앞에 두고 있다. 평소 보수적인 것 같았던 신부님도 강론에서 ‘이 시대가 안녕하신가’고 물었다”면서 “성탄의 밤이면 다짐하곤 하는 세상에 대한 사랑과 마음의 평화가 늘 우리와 함께 하길 빌어 본다”고 적었다.
이듬해인 2014년 성탄절에는 “예수님의 낮은 삶을 생각한다. 태어남도 지극히 낮았다”며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권력과 강함이 아니라 낮음과 약함이다. 착함·관용·너그러움·포용·나눔 같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에는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겐 위로가, 춥고 외로운 분들에겐 따뜻함이 골고루 함께하는 성탄절이 되길 기원한다”며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며 온기를 나누는 성탄절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6년에는 김상효 신부의 미사내용을 소개하며 “불세출의 영웅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불세출의 영웅은 우리를 모른다”며 “우리와 함께 살았고 우리와 함께할 우리인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성탄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은혜는 우리가 구원의 주체라는 사실”이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매년 성탄절에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63년 부산 영도의 신선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자서전 ‘운명’에서 밝히고 있다. 자서전에는 전후 구호식량을 배급해 주는 수녀님에 대한 고마움으로 세례를 받게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은 “내가 초등학교 1~2학년 때 배급 날이 되면 학교를 마친 후 양동이를 들고 가 줄서서 기다리다 배급을 받아오곤 했다. 싫은 일이었지만, 그런 게 장남노릇이었다”며 “꼬마라고 수녀님들이 사탕이나 과일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다. 그때 수녀님들이 수녀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어린 내 눈에 천사같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런 고마움 때문에 어머니가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됐다. 나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영세를 받았다”며 “영도에 있는 신선성당이었다. 나는 그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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