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우수’ 평가 받아도 지정취소 가능… “자사고 없애려는 규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4일 03시 00분


[자사고 옥죄는 정부]자사고 평가기준 상향 파장

“자율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시키려고 만든 평가죠. 어떻게 하면 자사고를 다 떨어뜨릴 수 있을지 교육부랑 교육감이 머리를 맞댄 것 같습니다.”

시도교육청으로부터 새로운 자사고 재지정 평가 기준을 받은 한 자사고 관계자가 쏟아낸 하소연이다. 그는 3일 “새 기준은 자사고를 없애려는 목적만 있는 것 같다”며 “법령상으로는 큰 문제가 없으면 재지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 당국의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 ‘입시기관 변질’ 교육감 지적 반영

자사고는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이번 평가 항목은 △교육과정의 다양성 확보 노력 △학생 선발의 공정성 △재정과 시설 여건 등 12개다. 재지정 평가를 하는 것은 자사고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평가는 ‘매우 우수’(100점)에서 ‘매우 미흡’(20점) 등 5등급으로 이뤄진다. 올해 재지정 평가는 전체 자사고 42곳 중 24곳에서 진행된다. 지정 연도가 달라서다.

지금까지 재지정 평가는 모든 지표에서 ‘보통’ 등급(총 60점)만 받아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새 평가 기준에서는 대부분의 자사고가 기준점을 못 넘겨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자사고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재지정 평가에서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 ‘국영수 이수단위 비율이 연평균 50% 미만’이어야 만점(5점)으로 점수를 주는 부분이다. 대학입시에 중요한 국영수를 집중적으로 가르칠수록 재지정 평가에 불리해진다는 의미다. 이 항목에서 ‘매우 미흡’ 등급을 받으면 총점이 기준점을 넘더라도 교육감이 직권으로 지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 A자사고 관계자는 “자사고가 입시기관으로 변질됐다는 교육감들의 지적을 반영한 것 같다”며 “교육과정 편성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회통합전형 대상자 충원율을 정량적으로만 평가(4점)하게 된 점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자사고는 법령에 정해진 대로 정원의 20%를 저소득층 자녀 선발을 위해 남겨둔다. 교육 기회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전형은 거의 매년 정원 미달이다. B자사고 관계자는 “학비를 지원해줘도 여러 환경적 차이를 느껴 학생들이 지원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지원자를 다 뽑아도 충원율을 못 채우는데 그걸로 낮은 점수를 받는다니 억울하다”고 했다.

○ 새 기준 평가하면 대부분 탈락할 듯

자사고가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에서 유불리가 갈릴 수 있는 점도 논란거리다. 상산고를 평가하는 전북도교육청만 기준점을 80점으로 높인 게 대표적이다. 자사고 총동문회와 지역 사회는 “전북만 80점으로 올리는 건 원칙 없는 협박이고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한다. 교육부는 “평가는 교육감 권한이라 우리가 높다, 낮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한발 물러섰다.

자사고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도 강화됐다. 교육부는 교육청의 재량평가 지표를 과거 10점에서 12점으로 올렸다. 여기서는 교육청이 마음대로 지표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경기도교육청은 ‘1인당 학부모 부담 교육비’(4점)를 지표로 넣었다. 500만 원 이하는 ‘매우 우수’, 1100만 원 이상은 ‘매우 미흡’이다. 2017년 경기도교육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자사고 학부모 부담 경비는 1년 평균 1287만 원이다. C자사고 관계자는 “자사고는 정부 지원금 안 받고 재단 돈과 학부모 교육비로 운영된다”며 “학생이 동의하고 온 건데 경비가 많다고 낮은 점수를 주느냐”고 지적했다.

자사고는 과거 평가에서 대체적으로 70∼80점대를 받아 왔다. 오세목 서울자사고연합회장은 “새 기준으로는 70점이나 80점 이상을 받을 자사고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학부모 “왜 자사고만 잡나”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 했던 중3 학부모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에 사는 학부모 D 씨는 “일반고는 면학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다 보니 아이를 자사고에 입학시키려 했는데 당장 올해 일반고로 전환될 수 있다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미 자사고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들의 항의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한 학교 안에 자사고생과 일반고생이 다니는 ‘한 지붕 두 가족’이 유지돼 분위기가 어수선해질 수 있다. 학부모 E 씨는 “정부가 일반고를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자사고만 잡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정부의 획일적인 자사고 폐지 방침은 교육의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과거 봐주기 식 평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엄정한 평가를 실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자사고 모두 ‘우수’ 평가#지정취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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