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투자자문 전문가가 본 규제한국
“규제, 한국 장점인 속도 떨어뜨려… 규정 모호해 공무원 결정이 곧 법
관료에게 일일이 신기술 평가받는 규제샌드박스 자체가 올드 시스템”
“한국의 공무원은 사업가에게 명확하지 않은 의견을 주거나 구속력 있는 법령 관련 해석을 주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업가들은 법령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사업을 계속하는 형편입니다.”
2006년 9월 도리언 프린스 당시 주한 유럽연합(EU)대사가 한국 정부에 보낸 문건 중 일부다. 2002년 9월부터 4년간 해온 대사직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한국에 외국인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보고 느낀 대로 써서 보낸 보고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9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투자자문 전문가들은 지금도 프린스 보고서의 내용이 유효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법령은 ‘모호하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해(ambiguous and contradictory)’ 담당 공무원의 해석과 결정에 따라 쉽게 법령 위반에 걸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 퍼스트 펭귄 발목 잡는 한국 규제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이자 외국기업 자문업체 KABC의 대표인 토니 미셸 씨(영국)는 “외국에선 흔치 않은 포지티브(positive)식인 한국의 규제법령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큰 장애물일 것”이라며 “이것을 바꾸기 전까지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미셸 대표는 1970년대에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적 있는 대표적인 지한파 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규제는 한국의 히든카드인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은 ‘안 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해 규제하는 방식이지만 한국은 ‘되는 것’을 정한 뒤 그 밖의 모든 것을 규제하는 방식이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든 ‘퍼스트 펭귄’(First Penguin·선구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미셸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부터 비판했다. 미셸 대표는 “새로 도입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관료들에게 일일이 신기술을 평가받는 것 자체가 올드 시스템”이라고 했다. 정부는 2월 11일 규제특례심의위원회를 열어 처음으로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허용했다. 그러나 기업 애로를 건별로 심의해 일부 기업에만 선택적으로 우선권을 줬다. 산업 전반에 과감하게 규제를 풀겠다는 애초 취지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법 해석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국에서 금융, 인프라, 에너지 분야 등에서 10년째 자문 업무를 하고 있는 마이클 장(호주) 법무법인 세종 선임변호사는 “투자를 원하는 기업들은 그저 투명한 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정이 명확하기만 하면 만족한다. 워스트(최악)는 지켜야 할 선이 어딘지 모를 때”라고 부연했다. 한국은 규제와 관련해선 ○도 ×도 아닌 △ 같은 나라라는 얘기다.
그는 공무원들의 잦은 인사이동도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새 담당자가 오면 이전 담당자가 했던 일을 따라가기에 바쁘고 자기 임기가 끝날 즈음에는 굳이 무리하게 이슈를 만들려고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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