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규제개혁 지지부진, 공무원들 움직이지 않는 탓”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03시 00분


“조직-제도 생겨도 매년 도돌이표… 다음 정부 감사 부담에 선뜻 못나서
정책감사 없애고 신분 보장해줘야”


“규제에는 항상 수혜자와 피해자가 있다. 그런데 공무원이 규제개혁 후 정부가 바뀌면 감사원으로부터 ‘왜 수혜자를 피해자로 만들고, 피해자에겐 특혜를 줬냐’라고 공격받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이 1일 “역대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추진했지만 성과가 미미한 이유 중 하나가 공직에 계신 분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0회 여기자포럼에 참석해 한국 경제구조의 문제점으로 폐쇄적인 규제환경을 지적했다.

박 회장은 “매번 규제개혁이 이슈로 등장하면서 이를 위한 조직과 제도가 신설되지만 결과를 보면 매년 도돌이표”라며 “(규제개혁 주체인) 공무원들이 감사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받게 돼 쉽사리 위험부담을 지려 하지 않는다”라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공무원들은 기본적으로 ‘법(규제)이 존재하지 않으면 혼란이 온다’고 생각하는 데다, (만약 규제를 없앴다가) 다음 정부에서 감사를 받을 수 있다고 하면 나 같아도 규제를 없애기 어려울 것”이라며 “감사원의 정책감사를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줄여 공무원들의 신분을 보장하고 규제개혁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파격적인 규제개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규제를 폐지하는 걸 기본으로 놓고 필요한 규제는 그 필요성을 공무원이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자는 제안도 했다. 박 회장은 “규제를 없애라고 하면 매번 ‘몇만 건 규제 없앴다’ ‘전체 규제의 70%를 없앴다’고 발표하지만, 복합규제가 많아 3개의 규제를 없애도 마지막 1개가 살아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없애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파격적 규제개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일부 결과물이 나오고 있는 ‘규제 샌드박스’와 관련해서 박 회장은 “일단 다행이지만 앞으로 법을 운용하는 데에 상당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법의 근본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샌드박스 포함 여부를 놓고 ‘관문의 수문장’이 무섭게 하면 법이 무용지물이 된다”며 “이 법의 취지를 그대로 살리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지난달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불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 발동에 대해선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동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제도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규제개혁#공무원#박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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