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데 분명 돈이 더 들어간다. 분명 빵빵하게 저녁도 먹었건만. 반갑잖은 군침이 밀려온다. 독서가 마음이 아니라 몸의 양식도 될 줄이야. 담뱃갑 따라 “체중이 불어날 수 있습니다”란 경고 문구라도 표지에 실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와 잠시 이별하고 나면 신나는 모험이 황홀경으로 펼쳐진다. 근사한 사진 때문이라면 더 나은 요리책이 훨씬 많다. 우리의 입을 달래주는 갖은 디저트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배우는 건 기대보다 더 즐겁다.
실은 디저트는 이름만 달랐을 뿐, 고대부터 존재했다. 옛사람이라고 ‘단짠단짠’을 싫어했겠나.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백과사전의 음식 분야 필자인 저자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디저트가 각광받은 건 중세 무렵이다. 역시 주인공은 ‘설탕’. 인도에서 사탕수수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한 뒤 돌고 돌아 유럽으로 흘러왔다. 당시엔 설탕이 병도 치료하는 비싼 약재이자 최고급 향신료로 대접받았다. 당연히 상류층, 그들만의 잔치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린 이들은 맛이나 모양을 따질 리 없다. 여유가 되니 폼도 잡는다. 디저트가 화려하게 꽃핀 17, 18세기가 왕정·귀족문화의 절정기였던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디저트는 눈으로 즐기는 ‘과시용’이 많았다. 성이나 영토를 미니어처처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설탕 등으로 만든 외벽을 부수면 안에서 새들이 날아오르는 디저트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재밌는 건, 과거엔 디저트가 꼭 식사 마지막에 먹는 요리는 아니었다. 유럽도 우리네 ‘한상차림’처럼 고기 생선과 함께 올라왔다. 지금과 같은 코스요리는 ‘러시아식’인데, 실용을 중시하던 이 풍조가 유럽으로 전해져 정착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디저트는 어느 한 나라가 ‘자기 것’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리저리 뒤섞이며 완성된 형태니까.
앞서 얘기했지만 ‘디저트의 모험’은 굉장히 즐거운 탐방이다. 세계 곳곳을 돌며 뿌리 내린 디저트를 따라, 미식여행을 다녀온 듯한 만족감이 크다. 특히 디저트의 양대 산맥이라 할 ‘크림’(아이스크림 포함)과 ‘케이크’는 따로 1장씩 할애해 설명했는데, 더욱 허기가 지니 주의하시길.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디저트가 19, 20세기 대중에게 퍼져 나가는 대목은 격변의 역사만큼 흥미진진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건, 이 모험이 너무 한쪽 동네만 들여다본단 점이다. 디저트라 부르진 않았을지언정, 다채로운 후식을 보유한 아시아를 너무 홀대한다. 중국과 일본은 1페이지뿐이고, 한국은 아예 없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도. 겨우 80일 동안 몇 나라 들러놓고 ‘세계일주’라 불러서야 되겠나. ‘리얼 어드벤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저자는 얼른 다시 짐을 싸시길. 아님 다른 누군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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