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강원도 일대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우리나라의 동쪽 등줄기가 쑥대밭이 됐다. 화마가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무너뜨리기까지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년 이상 사건·사고 현장을 경험한 한 기자조차 뉴스 속보를 보던 중 “언론사 입사 이래 가장 큰 사고가 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속초-고성-강릉으로 이어지던 산불은 생각보다 빨리 진화 됐다. 정부와 산림당국은 산불 발생 이튿날 아침 동해안 지역에 진화 헬기 51대와 소방차 872대, 1만3000여 명의 인력을 대거 투입하는 등 신속한 대처와 진화에 나섰다. 단일 화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장비와 인력 투입을 기록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들은 기자들을 만날 때 차분했지만 허탈한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화재를 마주하고서 놀란 가슴을 아직 쓸어내리지 못 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피해상황이 잘 보도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이제는 터만 남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주민들 대부분 마을에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를 다독였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한 주민은 “어젯밤(4일) 어머니를 급히 모시고 대피하는 바람에 틀니를 미처 못 챙겼다.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죽이라도 드리려고 속초 시내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주문한 세 개의 죽 중 두 개 값만 받더라.”며 “틀니도 급하게 맞추려니 너무 비싸 망설였더니 우선 아랫것만이라도 맞춰드리겠다 하며 제값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무너진 집 앞에서도 차분하게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모습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취재하며 다니는 동안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이 제일 많이 들렸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을 자연재해 앞에서 주민들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거의 온 마을이 무너지고 타버린 속초 장천마을 뒷산에 살구나무 꽃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그을음을 가득 묻힌 꽃잎이었지만 분홍빛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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