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 대형 산불도 못 이긴 ‘강원도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7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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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지역 대형 산불 발생 나흘 째인 7일 오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망운산 일대에 화마가 할퀴고 간 자국이 선명하다.
강원지역 대형 산불 발생 나흘 째인 7일 오후 강원 강릉시 옥계면 망운산 일대에 화마가 할퀴고 간 자국이 선명하다.


4일 강원도 일대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우리나라의 동쪽 등줄기가 쑥대밭이 됐다. 화마가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무너뜨리기까지는 채 몇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년 이상 사건·사고 현장을 경험한 한 기자조차 뉴스 속보를 보던 중 “언론사 입사 이래 가장 큰 사고가 될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서천리의 한 마을에서 홀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서천리의 한 마을에서 홀로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소방관.


다행히도 속초-고성-강릉으로 이어지던 산불은 생각보다 빨리 진화 됐다. 정부와 산림당국은 산불 발생 이튿날 아침 동해안 지역에 진화 헬기 51대와 소방차 872대, 1만3000여 명의 인력을 대거 투입하는 등 신속한 대처와 진화에 나섰다. 단일 화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장비와 인력 투입을 기록했다.

강원 속초시 장천마을 주민 박만호 씨(71)가 전날 일어난 산불로 허물어진 집을 바라보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한 평생 살아온 박 씨는 “무너진 집에서 50여 년을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라고 말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원 속초시 장천마을 주민 박만호 씨(71)가 전날 일어난 산불로 허물어진 집을 바라보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한 평생 살아온 박 씨는 “무너진 집에서 50여 년을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라고 말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마을 주민들은 기자들을 만날 때 차분했지만 허탈한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화재를 마주하고서 놀란 가슴을 아직 쓸어내리지 못 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피해상황이 잘 보도될 수 있도록 해달라”며 이제는 터만 남은 집안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주민들 대부분 마을에 다치거나 사망한 사람이 없어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로를 다독였다.

5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한 마을에 덮친 화마로 집이 무너진 주민들이 바닥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5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한 마을에 덮친 화마로 집이 무너진 주민들이 바닥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장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이웃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있다.
장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이웃들에게 간식거리를 나눠주고 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의 한 주민은 “어젯밤(4일) 어머니를 급히 모시고 대피하는 바람에 틀니를 미처 못 챙겼다.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죽이라도 드리려고 속초 시내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주문한 세 개의 죽 중 두 개 값만 받더라.”며 “틀니도 급하게 맞추려니 너무 비싸 망설였더니 우선 아랫것만이라도 맞춰드리겠다 하며 제값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무너진 집 앞에서도 차분하게 이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모습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취재하며 다니는 동안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말이 제일 많이 들렸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을 자연재해 앞에서 주민들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거의 온 마을이 무너지고 타버린 속초 장천마을 뒷산에 살구나무 꽃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그을음을 가득 묻힌 꽃잎이었지만 분홍빛이 선명했다.

아직도 꽃은 지지 않았다. 강원도의 봄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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