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하다간 중환자실 갈 것” 中 젊은이들의 워라밸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7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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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 996 웹사이트 큰 반향 … 장시간 노동 IT 기업 명단 폭로
996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하는 주6일제 근무
중국 IT 업계에 일상화된 악명 높은 장시간 노동제도
워라밸 추구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저항 주목

“프로그램 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Developers‘ lives matter).”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중국 정보통신(IT) 업계의 젊은 종사자들이 업계 전체에 퍼진 관행인 이른바 ’996‘ 업무 시간 제도에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996‘은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9시 퇴근하는 주 6일제 근무 제도를 가리킨다.

지난달 말 중국 IT 업계에 근무하는 일부 개발자들이 ’996.ICU‘이라는 이름의 ’반(反)996 운동‘ 웹사이트를 처음 만들었다. 웹사이트 이름은 ’996에 따라 일하다가는 중환자실(ICU) 간다‘는 뜻이다. 중국 IT 업계 종사자들이 장시간 노동의 압박을 받는 처지를 자조할 쓰는 표현이다. 프로그램 개발자들답게 자신들이 자주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소스 공유 플랫폼에 996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웹사이트 첫 화면 하단에 영문으로 ’프로그램 개발자의 목숨도 중요하다‘고 쓴 것은 2012년 미국에서 시작된 흑인 민권 운동의 슬로건 ’Black Lives Matter‘을 차용했다. 중국 IT 업계 종사자들이 996 제도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다만 중국 당국의 검열을 우려한 듯 이 사이트에는 “정치적 운동은 아니다. 우리는 노동법을 확실히 준수하고 고용주가 직원의 법적 권리와 이익을 존중하기를 요구한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 웹사이트가 이번주 중국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별(좋아요)을 준 사람이 7일 18만 명을 넘어섰다. 이 플랫폼에 개설된 인기 웹사이트가 많아야 수천 개 별을 받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인기다. 중국인들은 ’반996‘ 운동을 “프로그래머들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996은 2년 전부터 중국 IT 업계에서 일상화됐다. 중국에서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IT 기업에 들어가봐야 장시간 과로에 시달리다 건강을 해치고 삶의 여유도 잃어버린다는 불만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급기야 그 불만이 반996 웹사이트를 통해 폭발한 것이다.
반996 웹사이트는 996에 따라 1주일에 적어도 72시간을 일하면 노동법에 따라 현재 임금의 2.275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노동법은 노동 시간이 하루 8시간, 1주일 4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중국 IT 업계 종사자들은 반996 사이트를 통해 996 적용 기업들을 폭로하고 있다. 이미 화웨이, 알리바바, 앤트파이낸셜, 징둥 등 중국 주요 IT 기업을 포함한 48곳 기업의 명단과 근무 시간이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화웨이는 ’9106‘이다. 9시에 출근, 오후 10시까지 퇴근하는 주 6일 근무라는 뜻이다. 역시 ’9106‘인 모바일 간편 결제 기업 앤트파이낸셜도 명단에 올랐다. 반996 사이트는 “정말 직원을 개미(앤트) 취급하다”는 전 앤트파이낸셜 직원의 발언을 소개했다. 마윈 회장이 이끄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에는 “996 야근 문화의 공포스러운 수치를 보면 당신 역시 사표를 낼 것이다!”라는 소개가 붙었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징둥그룹에서 근무하는 첸샤오췬(錢曉群) 씨는 중국 한 매체에 “일한 지 1년이 안 됐지만 996은 물론, 997, 9117, 심지어 007까지 경험해 봤다”고 말했다. 007은 자정에 출근에 자정에 퇴근하는 주 7일제다. 24시간 일했다는 얘기다. 그는 “중국 젊은이들의 가장 이상적인 꿈은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등 IT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하지만 대학 때는 밤 10시에야 집에 돌아가 업무 외에 다른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하게 될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의 인터넷 기업이 ’야근의 재난구역‘이 됐다고 비유했다. 사태가 심각하자 관영 매체들까지 가세했다. 중국청년보는 “시간을 맞춰놓은 자명종 같은 젊은이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라며 “사회 시스템 차원에서 젊은이들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줄일지 직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의 웹브라우저들은 3일부터 이 웹사이트 접속을 막아 통제를 시작했다. 웹사이트 주소를 치면 “사기 정보가 포함돼 있다”고 나온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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