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를 부리던 복실이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2년 동안 가족처럼 지내던 개가 죽은 모습에 저도 울고 서울에서 달려온 제 딸도 울었습니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성천리에 사는 탁영일 씨(59)는 반려견을 잃은 슬픔에 눈물을 글썽였다. 탁 씨는 집 옆 자신의 공장에서 개 네 마리를 키웠다. 하지만 이번 불로 두 마리가 죽고 한 마리는 실종됐다. 6일 탁 씨 곁에는 불에 그슬려 털이 회색빛으로 변한 개만 맴돌았다. 탁 씨는 워낙 급하게 대피해 개들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그는 “묶어두지 않았으니 어디 도망가 살아남기만 바랐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며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강원 지역 산불은 사람들의 터전뿐 아니라 수많은 동물의 생명도 앗아갔다. 주민들은 새까맣게 그을린 가축들 사체를 보고 혼자 탈출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토로했다.
5일 오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최모 씨(73·여) 집 축사에는 태어난 지 두 달 남짓한 새끼 흑염소 두 마리가 미동도 않고 누워있었다. 살아남은 부모 염소는 죽은 새끼염소 곁을 맴돌았다. 사람이 죽은 새끼 곁에 다가가자 부모 염소는 구슬피 울었다. 최 씨는 대피할 때 축사 문이라도 열어두지 못한 일이 큰 후회로 남았다. 그는 “마당으로 불꽃이 떨어지는 모습에 휴대전화와 틀니도 못 챙기고 아들 차를 타고 허겁지겁 빠져나왔다”며 “내만 살라 한 게 미안하다(나만 살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김명만 씨(58)는 키우던 소 여섯 마리 중 다섯 마리를 잃었다. 죽은 소 네 마리는 송아지를 배고 있었다. 6일 오후 김 씨의 축사 주변에서는 소 사체가 부패하면서 악취가 나고 파리떼가 꼬였다. 일부 사체는 내장이 드러났다. 간신히 살아남은 소 한 마리는 바닥에 앉아 부들부들 떨었다. 등과 코는 불에 그슬렸고 엉덩이 살갗은 빨갛게 벗겨졌다. 김 씨는 “살아남은 한 마리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도저히 못 쳐다보겠다”며 눈시울을 훔쳤다.
용촌리의 한 양계장은 불에 타 지붕은 온데간데없고 철골조만 남았다. 660㎡가량 되는 양계장 바닥에는 닭 약 1만 마리 사체가 숯덩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나머지 양계장 세 곳도 상황은 같았다. 양계장 운영자 주모 씨(33)는 모두 4만 마리를 잃었는데 대부분 부화한 지 22일 된 어린 닭들이다. 주 씨는 “양계장에 있다가 불이 났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며 “허둥지둥 대피하느라 못 챙긴 닭들에 너무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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