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세계적 호텔 체인 리츠칼턴의 창업자이자 근대 호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자르 리츠가 가장 먼저 썼다. 그가 1898년 파리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리츠호텔을 처음 열었을 때 진짜 왕족이나 귀족이 주 고객이었다. 리츠는 ‘평민이라도 왕처럼 돈을 쓰는 손님은 왕처럼 모신다’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비스 정신을 담아 이 말을 만들었고, 이후 오랜 세월 골목식당부터 대기업까지 ‘고객 만족 경영’의 모토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말이 변질되고 지나쳐 정말 손님이 왕 노릇을 하려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돈 몇 푼 냈다고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갑질을 하는 ‘진상 손님’들이다. 지난해 11월 울산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중년 남성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봉투째 20대 여성 직원 얼굴에 집어던지는 영상이 퍼져 공분을 샀다. 서울 패스트푸드 매장, 경기 용인의 백화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말 욕설은 물론이고 폭행 협박 성희롱을 일삼는 ‘소비자 갑질’이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것이 근로자와 손님 사이의 균형을 찾자는 ‘워커밸’이다. ‘worker-customer balance’의 줄임말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 처음 등장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직장인의 저녁 있는 삶을 추구했다면 워커밸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노동 보호를 내세운다. 고객을 위해 자기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는 국내에 740만 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0%를 웃돈다. 이들은 1983년 감정노동의 개념을 처음 만든 미국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가 표현한 대로, 지금도 “감정을 파는 대신 죽음을 사고 있다”.
▷다행히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 백화점 곳곳에 ‘직원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걸렸고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는 식당도 등장했다. ‘반말로 주문하심 반말로 주문받음’이라고 써 붙인 커피숍도 화제다. 하지만 한 아르바이트 포털의 설문조사 결과, 80%가 워커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제 현장에 정착될 것이라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결국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나 기업 매뉴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다. 갑질하는 사회라고 분노하는 나도 뒤돌아서면 언제든 알바생에게 갑질하는 고객이 될 수 있다. ‘손놈’이 아닌 손님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상대 직원을 먼저 존중하는 매너 있는 소비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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