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깊이 들어가 불길과 육탄전… 숨은 영웅 ‘공중진화대’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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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 조기진화 뒤엔 ‘그들의 땀’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4일 오후 강원 인제군 남면 야산에 난 불을 초기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림청 공중진화대원들이 4일 오후 강원 인제군 남면 야산에 난 불을 초기 진화하고 있다. 산림청 제공
강원 영동 일대가 화마로 뒤덮이던 4일 오후 7시 반경. 홍성민 씨(46)를 비롯한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공중진화대원 11명이 미시령 입구에 도착하자 군데군데 불이 번지고 있었다. 홍 씨 등은 곡괭이처럼 생긴 ‘불갈퀴’를 들고 불길에 휩싸여 가는 산으로 돌진했다. 불갈퀴로 흙을 파헤쳐 불길을 덮고 가연물질을 제거하며 조금씩 정상으로 전진했다. 하지만 1m가량 불을 끄면 바람을 타고 30m 넘게 불이 번졌다. 인근 냇가에서 펌프로 물을 끌어와 필사적으로 뿌렸다. 지난해 말 위암 수술을 받은 김세환 씨(43)까지 나서 신발과 장갑을 새까맣게 그을리며 12시간 넘게 싸운 끝에 겨우 불길을 잡았다.

○ 소방차 닿지 않는 곳 먼저 돌진

공중진화대원은 강원 산불 진화의 ‘숨은 영웅’이다. 전국 12개 산림항공관리소에서 이날 강원 산불 현장으로 투입된 대원 66명은 소방차가 닿지 못하는 산속 깊은 곳에서 불갈퀴와 소형 펌프만 들고 불과 싸웠다. 산불 진압 전문가인 이들이 모세혈관처럼 산속 곳곳을 누비지 않았다면 하루 만에 큰 불길을 잡기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게 중론이다.

충남 청양산림항공관리소의 최관식 씨(28)는 앞서 3, 4일 전북 남원의 산불을 진압하자마자 5일 강릉 현장에 투입됐다. 대원들은 관할 지역이 아니어도 산불이 크면 어디든 출동한다. 전날 한숨도 못 잔 최 씨는 5시간을 운전해 강릉 옥계면 현장에 도착해 전국에서 온 다른 대원들과 합류했다. 새벽인 데다 바람이 강해 안전을 위한다면 낮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산불 현장 앞이 시멘트 공장이라 자칫 대형 폭발이 우려돼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최 씨 등 대원 56명은 2개 조로 나눠 불을 잡으러 나섰다. 선봉대가 인근 냇가에서 펌프로 끌어온 물을 뿌리고 불갈퀴를 휘두르며 직진하면 후발대는 선봉대 양옆의 불길을 잡아줬다. 모두 한꺼번에 정상으로 돌진했다간 바람을 타고 번지는 불길에 고립될 수 있다. 6시간 사투 끝에 연기가 잦아들며 헬기가 불이 타오르는 지점에 정확히 살수할 수 있었다.

공중진화대원은 산림청 소속 6∼9급 공무원이지만 소방처럼 교대 근무할 인력은 없다. 강릉관리소를 제외한 10곳은 대원이 한 자릿수다. 2017년 6월 개소한 제주관리소에는 산불이 적게 난다는 이유로 대원이 없다. 특수수당도 월 4만 원이 전부여서 신입 대원 월급은 150만 원 남짓이다. 최 씨는 “가장 위험한 곳에 가장 먼저 진입하는 산불 전담 대원이란 사명감 하나로 일한다”고 말했다.

○ ‘일당 10만 원’ 특수진화대원도 맹활약

산림청 소속 계약직 대원인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의 활약도 빛났다. 관할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특수진화대원 331명은 매년 2∼11월 계약직으로 활동한다. 출동할 때마다 일당 10만 원을 받는다. 이번 산불에서는 대원 183명이 소방관, 공중진화대원과 최일선에서 싸웠다.

양양국유림관리소 특수진화대원 양승현 씨(45)는 4일 밤 강원 속초 산불 현장에서 지름 40mm 관창(물을 뿌리는 노즐)을 들고 불길과 맞섰다. 강풍에 몸이 휘청거리면서도 다음 날 아침까지 사투를 벌였다. 강릉국유림관리소 신재웅 씨(51)는 새벽부터 소방호스를 1km 넘게 잇고 또 이어 산으로 끌고 올라갔다. 7일 자신을 특수진화대원이라고 밝힌 A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는 많이 알려졌지만 저희는 더 열악하다”고 밝히며 자신이 착용했다는 마스크 사진을 올렸다. 시중에서 약 2000원 하는 제품이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도 이번 화재 진압에 큰 역할을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2017년 6월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수도권에서 고성이나 속초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통해 강릉을 거쳐 국도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번엔 최단거리로 출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속초=한성희 chef@donga.com / 고성=김민찬 기자
#공중진화대#산불#조기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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