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기가 부진하다’는 진단을 내린 건 최근 청와대나 정부가 보여준 경기 인식과 크게 대조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일부러 긍정적인 지표를 부각하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 지표들은 정부의 기대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도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낮추며 KDI의 분석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 KDI, 경기부진 공식화…정부 낙관론에 찬물
KDI가 ‘경기 부진’을 공식화함에 따라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경기 인식이 안이했다는 지적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15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연초 산업활동 및 경제심리 지표 개선 등 긍정적 모멘텀이 있다”고 진단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같은 달 19일 “국가 경제가 견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KDI는 7일 보고서에서 내수 수출 생산 투자 등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 같은 긍정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업황 악화→수출과 설비투자 감소→생산 감소’의 악순환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2월 광공업 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 줄며 전월(―0.2%)보다 하락 폭이 크게 확대됐다.
KDI는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의 의견을 정면 반박하는 분석도 내놨다. 정부가 위안거리로 여기며 ‘좋은 흐름’이라고 봤던 소비와 서비스업 생산도 실제는 그리 좋지 않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1월 소매판매가 증가세로 돌아섰고 소비심리도 나아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KDI는 “2월 소매판매액은 설 명절 이동 영향으로 전년 동월보다 2% 줄었고, 1∼2월을 합산한 평균으로도 전년보다 증가폭이 축소됐다”며 “민간소비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민간소비의 척도가 되는 서비스업 생산도 도소매업(―3.8%)을 중심으로 감소세로 전환돼 우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재부는 재정 정책을 동원한다면 지나친 경기 급락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경기를 잘못 진단했을 때 시장에 큰 혼란이 생길 수 있으므로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통화+재정’ 경기부양 패키지 전망도
외국계 투자은행(IB) 등 세계 주요 기관들도 잇달아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투자은행 노무라는 최근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 2.5%에서 2.4%로 내렸다. 무디스는 2.3%에서 2.1%로 낮췄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기존 2.8%에서 2.6%로 하향조정했다. 국내 기관인 국회예산정책처도 이달 초에 성장 전망치를 2.7%에서 2.5%로 내려잡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이달 1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내놓을 수정 경제전망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은이 1월 내놓은 성장률 전망치는 2.6%지만, 그 후 석 달 동안 대내외 악재가 추가되면서 하향 조정 압력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이 수정 성장률을 내놓을 때 전제로 활용하는 세계 경제 전망도 기존보다 나빠진 상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압력도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한은은 통화 정책보다는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올 들어 저물가 현상이 더 심해진 데다, 경기 전망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어 재정과 통화정책을 결합한 정책조합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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