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별세] 한평생 ‘항공·운송’…‘오일쇼크’, ‘외환위기’ 를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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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8일 09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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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70)이 별세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조양호 회장은 8일(현지시간) 새벽 0시 16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폐질환으로 별세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의 한 병원에서 요양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조 회장은 1949년 3월 8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조 회장은 경복고를 졸업해 1975년 인하대 공업경영학과 학사, 1979년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 입사는 1974년이다.

조 회장은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 이명희 씨와 1973년 결혼해 1남 2녀를 뒀다. 장녀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고 장남은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차녀는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다.

1980년 대한항공 상무에 오른 조 회장은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고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다.

45년 이상 항공·운송 사업에 매진한 조 회장은 '항공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워커홀릭'으로 알려진 조 회장은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두루 거치며 실무를 익혔다.

조 회장은 1974년 1차 오일쇼크가 한창인 시절 업계에 발을 들였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는 2차 오일쇼크가 터졌을 때다. 당시 연료비 부담으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과 유나이티드항공은 직원 수 1000명을 감원했다.

이때 조 회장은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시설·장비 가동률을 높이는 '역발상' 전략을 전개했다. 항공기 구매도 계획에 맞춰 진행했다. 불황 시기를 기회로 삼아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이런 결단은 오일쇼크 이후 새로운 기회로 떠오른 중동 수요 확보와 노선 진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한항공 소유 항공기를 매각 후 다시 임차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비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는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의 주력 모델인 737-800과 737-900 기종 27대의 구매 계약을 단행했다. 보잉은 감사의 의미로 계약금을 줄였다.

또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실무지식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창설에 큰 역할을 했다.

한국 방위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했다. 조양호 회장은 2004년 6월 제11대 한국방위산업진흥회 회장으로 선임된 이래 14년간 한국방위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앞장섰다.

조 회장은 우리나라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2009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아 평창 유치에 큰 역할을 했고, 이후 2014년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며 올림픽 준비에 힘을 보탰다.

대한탁구협회장이자 아시아탁구연합 부회장도 지냈고, 대한항공에 탁구, 배구 실업팀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실업팀을 창단해 운영하기도 했다.

조 회장은 40년 넘게 항공업계에 몸담으며 숱한 고비를 넘겼지만 지난달 27일 주총에서 대한항공 사내 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20년 만에 대표이사직에서 내려왔다.

김소정 동아닷컴 기자 toy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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