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와 함께 우리 정부 외교안보부처의 3륜(輪)을 이루고 있는 핵심부처이고, 상당한 정도의 업무연관성도 있습니다. 2002년 외교부가 독립청사로 이전하기 전까지 통일부와는 같은 건물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북한 문제를 다룰 때는 거의 한 몸처럼 긴밀한 호흡이 이뤄져야 하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외교부와 통일부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 ‘핫바지’ 라고 놀림 받았던 통일부
하루가 멀다하며 터져 나오는 ‘본헤드 플레이’로 만신창이 신세지만 한때 외교부의 프라이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과거 20여 명을 선발하던 시절 외무고시를 ‘패스’ 했다는 외교관들에게는 일종의 선민(選民)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외교부 사람들은 사석에서 “통일부는 고시 합격생의 비중도 작은 ‘능력이 떨어지는’ 부서”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 출범한 이명박(MB) 정부 당시 정권인수위는 통일부를 공중 분해한 뒤 외교부의 1개 국으로 편입하려는 계획을 세운적도 있습니다. 김대중(DJ)-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전면부정이 MB정부 국정철학의 주요한 축 중 하나였던 탓이기도 했지만 통일부에게는 절대로 잊어버릴 수 없는 우울한 집단기억(collective memory)으로 남아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외교부 우위 기조는 계속됐습니다. ‘오병세(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장관자리를 지켰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로 불렸던 윤병세 장관의 기세에 눌려 통일부는 남북대화에서 조차 기를 펴지 못했습니다. 오죽했으면 통일부 장관 스스로가 ‘핫바지’라며 자조 섞인 농담을 했을까 싶습니다.
● “처음으로 외교부를 눌렀다”
오랜 기간이지는 않았지만 통일부가 우위에 있었던 시기가 있기는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북한과의 화해협력을 강조하는 ‘진보정권’에서는 통일부에 힘이 실렸던 것이죠.
대표적인 시기는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통일부 장관을 맡았던 때(노무현 정부 시절, 2004년 7월~2005년 12월)입니다. 당시 통일부 장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했는데 지금으로 치면 국정원장, 대통령안보실장과 안보실 차장, 외교부장관 등이 모두 정 장관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구조였습니다. 당시 잘 나가던 외교부 북미국장이 장관실에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통일부 직원들이 “처음으로 외교부를 눌렀다”고 소곤거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DJ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설계자로 불렸던 임동원 장관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멘토’ 이종석 장관시절에도 적어도 통일부가 외교부에 기가 눌려있던 시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대북제제 우회로 뚫어라”
역사가 오래된 외교부와 통일부의 ‘구원(舊怨)’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앞으로 펼쳐질 대북 정책과 북핵 정책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조명균 장관 후임으로 김연철 전 통일연구원장이 통일부를 이끌게 된 것과도 무관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아는 사람은 아는 이야기지만 조명균 장관의 교체 뒤에는 대북화해협력 정책이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한 청와대 참모진의 불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대북제재 해제에 부정적인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통일부는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창의적인 대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줘야 하는데 조명균 장관이 지나치게 미국 눈치를 보면서 기회를 놓쳤다는 판단을 했다는 말입니다.
결정적으로는 비핵화 대화과정에서 미국이 말하는 비핵화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지대화’는 다른 개념이라고 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때 마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고 북-미 양국이 말하는 비핵화의 개념은 같다고 해 온 문재인 정부의 공식입장과 결을 달리한 것이어서 큰 파문이 일었습니다.
● 김연철 VS 리선권
청문회에서는 ‘소신’을 모두 뒤집었지만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된 김연철 장관은 전임자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노이 빅딜 실패 이후 속도조절에 나선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고, 남북대화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불행히도 과거의 경험은 충분한 경제적 보상 없이는 북한이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진보정부’ 10년 시기 매년 30만~50만t의 식량(주로 쌀)과 비료지원이 남북관계를 견인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통한 외화획득 없이 과연 장관급회담이나 각종 당국 간 대화에 응했을까요?
성과를 강요받을 김연철 장관이 과연 대북 퍼주기 논란을 불식시키면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카운터 파트는 우리 재벌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막말을 했고, 안하무인 식으로 회담 상대자에게 핀잔주기를 밥 먹듯 했던 리선권 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김연철 장관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막말성 발언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한 성격하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마주 앉는 날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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