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같지 않은 할아버지들이 화제다. 지난달 21일 서울패션위크 런웨이에서 은발을 휘날린 모델 김칠두 씨(65), 같은 달 24일 ‘전국노래자랑’에서 손담비의 ‘미쳤어’를 소화한 ‘할담비’ 지병수 씨(77). 이들의 당당함을 배워보려는 시니어들이 모였다.
이달 4일 낮 12시 반 송파구 송파여성문화회관 강의실. 6070세대 22명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색 티셔츠에 헐렁한 면바지 차림부터 검정 페도라에 위아래 데님 소재인 이른바 ‘청청패션’까지 옷차림은 각양각색이다. 눈빛에는 긴장과 기대가 혼재했다. 송파구 시니어모델 강좌의 첫 수업이다.
시작은 ‘벽서기’였다. 양 발꿈치와 무릎을 붙이고 3면이 거울인 벽에 기대서는 것이다. “엉덩이와 등허리 사이에 주먹 하나 정도 공간을 남기고 엉덩이, 어깨는 거울에 붙이세요.”
정면 자세와 걸음걸이 교정의 기초라는데 평생 멋대로 해온 자세를 고치고 ‘바르게’ 선다는 게 만만치 않았다. 몇몇은 무릎이 잘 모아지지 않아 다리에 힘을 바짝 줬다. 젊은 남녀 모델을 비롯한 강사 3명이 한쪽만 들뜨거나 앞으로 튀어나온 어깨와 골반을 잡아줬다.
본격 워킹이 이어졌다. 포 스텝(four step)이다. 여성은 고양이같이 날렵한 ‘1’자로, 남성은 풍채 좋아 보이는 ‘11’자로 걷는 것을 목표로 한다.
“원(one) 한쪽 다리를 드시고, 투(two) 그 다리를 사선으로 쭉 펴세요. 쓰리(three) 발꿈치를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포(four)에 앞으로 오실게요. 자, 원 투 쓰리 포….”
구호에 맞춰 두 줄로 선 수강생들이 전면거울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균형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거나 스텝이 익숙하지 않았다. 강의실을 앞뒤로 서너 번 왔다 갔다 했다. 수강생들은 서로 마주보며 “안 써본 근육이라 다리가 자꾸 풀리는 것 같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그룹 아바의 ‘댄싱 퀸(Dancing Queen)’이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 영화 ‘프리티 우먼’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같은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자 이내 거울 속 자신에 빠져들 듯 워킹연습을 거듭했다.
수강생 22명 가운데 남성은 6명이나 됐다. 모델이라고 하면 여성을 떠올리는 선입견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워킹연습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 저도 모르게 구부정한 노인네가 되기는 싫었어요. 좋은 자세로 잘 서있기만 해도 당당해보일 것 같고….”
10여 년 전 퇴직한 김일권 씨(73)를 비롯해 이들 6명이 수강 이유로 꼽은 것은 자세였다. 윤모 씨(62)도 “30년간 앉아서 일하다 보니 자세가 좋지 않았다. 목디스크로 고생한 아내가 자세 교정에 좋을 것 같다며 추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씨는 “생소했지만 커리큘럼을 보니 자세뿐 아니라 (옷차림 등) 스타일링도 가르쳐준다니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업은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런웨이를 걷듯 거울을 향해 자신만의 폼으로 나아가면서 끝났다. 걸음을 멈추고 포즈를 취하자 서로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12주간 기본자세와 워킹 등 기본기를 배우고 하반기 시니어 패션쇼 무대에 선다. 송파구 관계자는 “이번 시니어모델 강좌는 수강생들이 요청해서 개설했다”며 “젊음의 전유물로 여기던 패션모델에 도전하며 적극적으로 인생 후반기를 꾸려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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