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 절반 분담 방안 교육청과 협의 없어
교육감 "우선 수용" vs "거부해야" 엇갈려
교부율 인상안 좌절…예산당국 설득 실패
정부·여당이 9일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고교무상교육 재원 2조원 중 절반인 9466억원만 부담하고 절반은 일선 교육청이 부담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계획은 일단 교육감들의 동의를 받지 않은 데다, 절반이나 예산 부담을 떠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교육감들도 있어 정부와 교육청 간 제2의 누리과정 사태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여당은 이날 오전 7시30분 국회에서 당·정·청 협의 후 고교무상교육 재원 2조원 중 중앙정부와 교육청이 각각 9466억원(47.5%)씩, 지자체가 1019억원(5%)을 분담하는 내용의 고교무상교육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당장 오는 2학기 시작되는 고3 무상교육 예산도 모두 교육청이 감당하도록 했고, 단계적으로 확대해 고교무상교육이 완성되는 2021년에는 재원 2조원 중 1조원 가까운 예산을 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상황은 제2의 누리사태처럼 될 수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만 5세를 대상으로 실시하던 영·유아 무상보육 ‘누리과정’을 만 3~4세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과 달리 세수가 줄어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영·유아 누리과정 재원 2조원을 모두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떠넘겼다. 이를 두고 중앙정부와 교육청은 수년간 대립했다.
실제로 이날 당·정·청 발표 이후 일선 교육청 관계자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당초 10~20%, 최대 30%까지 교육청이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절반까지 감당해야 할 줄은 몰랐다”면서 “교육감협의회와 별도의 논의 없는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의견을 모아 공식 입장을 발표할 방침이다.
일부 교육감은 “일단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른 한쪽에서는 국정과제를 위한 예산이니 “국가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면서 교육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고교무상교육을 실시한 제주교육청 이석문 교육감은 환영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교육감협의회는 지난달 14일 “고교무상교육이 제2의 누리과정 사태로 비화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며 내국세 대비 지방교육재정 교부율을 인상해 전액 국가가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과제 예산인 만큼 100%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쉬울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비율과 수치를 안으로 제시해 의견을 구한 것은 아니지만 수시로 교육감들을 한 명씩 만나 고교무상교육 도입계획에 대해 설명했다”고 말했다.
당장 올해 2학기 고등학교 3학년부터 고교무상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선 3856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교육부는 교육청 자체예산을 활용해 상반기 중 추경을 편성해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상교육을 실시할 경우 이미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지원되던 교육급여·교육비 등 1481억원은 따로 들지 않기 때문에 교육청은 사실상 2375억원만 분담하면 된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교육청마다 평균 140억원을 부담하면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날 오후 3시 열린 교육청 예산담당자 협의회에서도 고교무상교육 도입 필요성과 예산 확보방안을 충분히 설명한 뒤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교육부 설세훈 교육복지정책국장은 “교육감들 역시 고교무상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교육청의 재정부담을 덜기 위한 추가 지원책도 향후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당초 고교무상교육 재원을 두고 교육부와 교육청 모두 내국세 대비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0.87%포인트 인상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예산당국 논의 단계에서 끝내 좌절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2021년 이후 학령인구 감소로 예산이 정체되거나 줄어들기 때문에, 실제 수요를 반영할 수 있는 증액교부금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일단 교부세율을 올리면 영구 재원이 되는 만큼 일단 5년간 증액교부금으로 충당한 뒤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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