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는 9일 “해방 이듬해인 1946년부터 오늘까지 고국에 모셔온 애국선열 유해는 139위로 모시고 와야 할 분들이 아직도 많다”며 “정부가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이날 인천국제공항에서 진행된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영사를 통해 “이틀 후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애국 선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며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김태연, 강영각, 이재수 애국지사의 유해 3구가 송환됐다.
이 총리는 “정부는 지난해 독립운동가 포상기준을 대폭 개선해 지금까지 여성과 의병 독립운동가 1800여분, 독립운동 수형자 2400여분을 추가로 밝혀냈다”며 “올해 3·1절에는 역사상 가장 많은 333분을 포상했다.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의 복원과 보존·관리에도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해도 장연 출신의 김태연 애국지사는 20대를 항일 운동에 바쳤다. 3·1운동 직후 부인과 어린 네 딸을 고향에 두고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의정원 의원과 구국모험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일제와 싸우시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짧은 삶을 마쳤다. 정부는 1995년 김태연 애국지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평안남도 강서 출신의 강영각 애국지사는 1905년 아홉 살에 노동이민을 간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로 갔다. 그 후 그의 가족은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서 모든 생애와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강영각 애국지사는 신문을 발간해 고국의 소식을 바로 알리고 독립의지를 세계에 전했다. 해방 이후에도 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다가 해방 이듬해 쉰 살로 생을 마감했다. 1997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서울 출신인 이재수 애국지사는 이민 1세대로 캘리포니아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낮에는 40도가 넘는 폭염을 견디며 농장 일을 하고 밤에는 야학을 열어 교포들에게 역사를 가르쳤다. 대한인국민회에서 독립자금을 모으는 등 구국운동에 매진했다. 1956년 여든 살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민족교육에 힘썼다. 정부는 지난해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이 총리는 “세 분의 애국지사님은 조국독립을 위해 가산을 쏟아 부으셨고 목숨도 아끼지 않으셨다. 숭고한 위국헌신에 경의를 표하고 그리시던 조국의 품에서 안식하시기를 기원한다”며 “오랜 세월 참고 기다려주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위로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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