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저 비행기군요….” 1960년대 중반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 미국 공군 고위 장성과 점심식사를 하던 한국 군 장성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전 식탁 위 접시를 덜그럭거리게 한 굉음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뜻이었다. 그 비행기는 미국이 1965년에 개발한 SR-71 블랙버드 초음속 정찰기로 대북 감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음속의 3배 이상으로 비행하는 블랙버드는 1968년 1월 미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된 사건도 발생 하루 만에 가장 먼저 확인했다.
▷냉전시절 미국은 적국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정찰기 개발에 매달렸다. 1955년 취역한 U-2 정찰기가 그 대표작이다. U-2기는 적기가 쫓아올 수 없는 고고도(高高度)에서 소련 영공을 넘나들며 핵·미사일 기지와 격납고 등 특급 기밀시설을 촬영했다. 1960년 U-2기 1대가 소련의 신형 지대공미사일에 격추됐지만 동체 개조와 항법·정찰장비 개량을 거쳐 반세기 넘게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주한미군에 배치된 신형 U-2기는 대북 감시의 핵심으로 지금도 휴전선 인근 상공을 누비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감시하는 데도 미 정찰기의 역할이 크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준비 과정에서 방출되는 통신·전자신호는 물론이고 미사일의 비행 궤적과 극미량의 핵물질을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RC-135 계열의 전략정찰기는 수백 km 밖에서 도발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질 때마다 미국은 각종 정찰기를 본토에서 주일미군 기지로 전진배치한 뒤 한반도 상공에 투입해 대북 감시의 끈을 바짝 조였다.
▷하노이 합의 결렬 이후 북한이 도발 징후를 보이자 미 정찰기들이 한반도 주변으로 총출동했다. 미 공군에 2대밖에 없는 RC-135U(컴뱃센트)를 비롯해 RC-135/VW(리벳조인트), RC-135S(코브라볼) 등이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수시로 동·서해로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 대화는 하겠지만 딴청을 부리는지 눈 깜박이지 않고 주시하겠다는 미국의 경고 메시지다. 북한은 7년 전 평북 동창리 발사장에서 ‘위장전술’로 한미 양국을 안심시킨 뒤 장거리미사일을 기습 발사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미국의 정찰 감시능력이 더 정교하고 촘촘해졌다. 과거의 ‘속임수’를 재탕하려는 시도는 포기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는 게 북한에 남은 유일한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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